‘꿈꾸는 최상급 공책’으로 승부수 던진 1인기업 CEO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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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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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아날로그 노트, 디지털 바람 뚫고 순항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자사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복면사과 까르네’의 CEO 김영조씨. 1인 기업을 운영하는 그는 “남들처럼 사는 것이 아닌,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내가 만든 노트가 전 세계인의 손에 들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자사 제품을 소개하고 있는 ‘복면사과 까르네’의 CEO 김영조씨. 1인 기업을 운영하는 그는 “남들처럼 사는 것이 아닌,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내가 만든 노트가 전 세계인의 손에 들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때 주변에선 “다시 취업하겠지”라고 했다. 재취업이 아니라 ‘1인 기업’을 하겠다고 했을 땐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수군거렸다. 디지털 세상에서 창업 아이템으로 ‘노트’를 선택했을 때는 “정상이 아니다”는 말까지 나왔다. ‘복면사과 까르네’의 최고경영자(CEO)이자 배달사원 겸 마케팅 담당자인 김영조 씨(34)의 이야기다.

○ 종이는 사라지지 않는다

한 케이블방송국의 PD로 일하던 김 씨는 2008년 6월 회사를 그만뒀다. 4년여에 걸친 직장생활 동안 체력과 열정이 고갈됐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잠시 쉬다가 취직할 생각이었습니다. 창업은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냥 아내와 함께 못 다닌 여행을 다니고 싶었어요.”

그리고 찾은 파리. 박물관에 전시된 19세기 명사들의 손때 묻은 노트가 시선을 잡았다. 그는 평소에도 다양한 용도의 노트와 수첩 4, 5권을 가지고 다니는 ‘메모광’. ‘모딜리아니와 보들레르가 사용한 저 노트의 종이 종류는 뭐지? 지금 노트와 뭐가 다를까?’ 시작은 마니아적 호기심이었다.

그때부터 종이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몰스킨(이탈리아), 미도리(일본), 클레르퐁텐(프랑스) 등 유명 노트 브랜드를 파고들었다. 이론 공부를 위해 국립중앙도서관을, 실제 제작 과정을 알기 위해 인쇄공장이 모여 있는 서울 중구 을지로4가를 매일 드나들었다.

“그러지 말고 당신이 직접 만들어보지 그래?”

2009년 2월 좋은 노트를 찾아보겠다며 일본까지 가는 남편을 지켜보던 아내가 권했다. 취미가 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디지털화하는 시대에 아날로그의 대명사인 노트라니.

“디지털시대가 되면 종이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지만 종이 소비는 늘고 있습니다. 머릿속 생각을 종이만큼 쉽게 끌어내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휴대하기 편하고 쉽게 메모할 수 있는 노트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결합

목표는 명확했다. 친환경적인 종이로 최상급의 노트를 만들겠다는 것. 마음에 드는 종이를 찾아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전전했다. 2010년 5월 마침내 베트남에서 시제품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화학물질을 최소로 사용하고 필기감이 좋은 종이를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 종이를 가지고 시제품을 만드는 건 더 어려웠습니다. 외국어요? 영어 말고는 할 줄 몰라요.”

비결은 친구들의 도움이었다. ‘좋은 노트를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그의 말에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만난 각국의 노트 마니아 친구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종이 공장의 주소다’, ‘공장장을 소개시켜주겠다’, ‘잘 곳이 없다면 우리 집에서 머물러라’고 답해줬다. 모두가 현지인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살아있는 정보였고 이 정보는 퇴직금만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드디어 8월 ‘복면사과 까르네’를 선보였다. 더 많은 사람에게 선보이고 싶어 가격은 3300원이 넘지 않게 책정했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비슷한 종류의 노트 가운데 2만 원이 넘는 제품도 있다.

“가격을 낮게 책정한 것은 직접 생산을 통해 거품을 뺐고 1인 기업이라 마진을 최소화했기 때문이죠.”

마케팅은 철저히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만을 이용한다. 실제로 그의 ‘트친(트위터 친구)’인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도 “디자인이 깔끔하고 좋더군요. 노트에 글을 남기기 위한 것 외의 군더더기를 없앤 느낌입니다”라며 트위터에서 호평했다. 물론 두 사람이 만난 적은 없다. SNS 덕분에 외국에서도 구매요청이 들어온다.

발송은 모두 우편으로 한다. 3000원에 달하는 택배비와 불필요한 포장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 납품할 때는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친환경 종이를 사용하는 기업이니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리고 두세 권의 물량은 일반 우편비용만 내도 충분히 보낼 수 있어요.”

판매량은 서서히 늘고 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월매출이 200만∼300만 원은 된다. 그 덕분에 그는 매일 직접 포장한 제품을 들고 우체국을 찾는다. 원하는 일을 찾은 그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이익이 많이 나는 기업이 아닌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세계 시장을 공략하려고요. 19세기 파리의 카르네(carne·노트 수첩을 뜻하는 프랑스어)처럼 다양한 사람의 사연과 생각이 담긴 ‘복면사과 까르네’가 세계 곳곳에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죠.”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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