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는 대표적인 ‘정중동’ 시장으로 꼽힌다. 사업 규모가 워낙 커서 신규 사업자가 진입하기 쉽지 않다 보니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4곳이 순위 변동 없이 시장을 지키고 있다. 정유업계에는 ‘시장 점유율 1% 바꾸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 정유업계가 최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제 마진율이 나날이 떨어지고, 화석연료에 대한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남다른 활로를 찾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란 위기감 때문이다. 4대 업체는 ‘4인 4색’의 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업계 1위인 SK에너지는 ‘업종 분리’로 미래에 대비하기로 했다. 너무 커져 버린 SK에너지의 덩치를 날렵하고 민첩하게 바꾸겠다는 취지다. SK에너지는 지난달 중국에서 이사회를 열고 1년여 논의해온 석유와 화학 분야의 분사 방침을 확정했다. 지난해 윤활유 부문을 SK루브리컨츠로 떼어내면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내년 1월부터 석유와 화학도 자회사로 독립시키기로 한 것이다. SK에너지는 연구개발(R&D) 위주의 헤드쿼터 역할에 전념할 것으로 전망된다.
GS칼텍스는 지난해부터 고도화 설비에 막대한 돈을 투자해 성과를 내고 있다. 일반적인 원유 정제 마진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높은 고품질 휘발유를 뽑아내는 고도화를 통해 매출, 특히 수출을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GS칼텍스는 2조6000억 원을 들여 완공한 전남 여수의 3차 고도화설비를 조만간 본격적으로 상업 가동한다. 이 경우 GS칼텍스의 고도화 비율(약 28%)은 기존 1위인 에쓰오일(25%)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3, 4위인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두 곳 모두 대기업의 네트워크를 통한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에쓰오일은 1일 STX그룹과 에너지 관련 사업 분야의 상호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해 대기업과의 공조를 통해 기존의 정유, 석유화학을 넘어서는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려는 것이다. 해외 광물자원 개발, 태양광과 풍력 개발 등에 적극 뛰어들 태세다.
최근 현대중공업의 일원이 된 현대오일뱅크는 대기업 계열사 편입을 성장의 발판으로 보고 있다. 10년 이상 뿌리내린 외국계 기업 문화 대신 저돌적인 ‘현대 DNA’를 바탕으로 공격적인 경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카드와 자동차 등 현대의 다양한 네트워크가 현대오일뱅크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