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님, 신입사원으로 누굴 뽑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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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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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생활건강 채용혁명

응시자들이 만든 광고 시안, 20∼30대 주부들이 채점
영어점수 - 학점 등 ‘스펙’ 없애고 창의력 테스트 도입

LG생활건강은 올해 신입사원 채용과정에 지원자들의 역량을 고객들이 직접 평가하는 ‘고객 참여 채용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했다. 이 회사 주부고객 평가단이 응시자들이 제출한 치약광고 시안 과제물을 평가하고 있다. 사진 제공 LG생활건강
LG생활건강은 올해 신입사원 채용과정에 지원자들의 역량을 고객들이 직접 평가하는 ‘고객 참여 채용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했다. 이 회사 주부고객 평가단이 응시자들이 제출한 치약광고 시안 과제물을 평가하고 있다. 사진 제공 LG생활건강
‘축구공과 냉장고에서 공통적으로 연상되는 단어와 그 이유를 최대한 많이 적으시오.’

(검은 원 세 개를 겹쳐 놓은 그림을 보여주고) ‘그림을 본 적 없는 수화기 너머 상대가 동일한 그림을 떠올릴 수 있게끔 전화로 설명하는 다양한 방법을 최대한 많이 제시하시오.’

이달 초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여고에서 2010년도 LG생활건강의 마케팅·세일즈직군 신입사원 필기시험에 응시한 600여 명이 치른 창의력 필기시험 문항들이다. 언뜻 봐서는 상품 마케팅이나 세일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수수께끼 같은 문항에 지원자들이 적잖이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LG생활건강은 올해 신입사원 채용전형 과정에 처음으로 ‘창의력 필기시험’을 도입했다. 문항은 서울대 창의력연구소가 개발한 문제들을 구입해 활용했다.

이처럼 LG생활건강이 신입사원 채용에 창의력 시험을 도입한 배경에는 ‘기존 채용 시스템으로는 뽑을 수 없는 톡톡 튀는 창의성을 지닌 인재’를 채용하겠다는 차석용 사장의 의지가 담겼다. 차 사장은 지난해 5월 LG생활건강에서 창의 혁신 부문 자문역을 맡고 있는 KAIST 정재승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에게 창의적인 인재 채용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정 교수는 과학자이면서 SF소설 ‘눈먼 시계공’을 공동 집필한 인물이다.

차 사장이 부탁한 요지는 “시킨 일만 열심히 하는 조직 순응적인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만으로는 회사의 미래가 없다”며 “기존의 업무방식에 의문도 제기하고 제 할 일은 스스로 찾아 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충원할 방법을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1947년 ‘락희화학공업사’에서 출발해 국내 대표적인 생활용품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노후한 조직문화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어줄 ‘젊은 피’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채용전형에 고객이 심사하는 과정도 처음 도입했다. 마케팅·세일즈직 지원자들에게 상표는 물론이고 제품명도 인쇄되지 않은 백지 상태의 치약제품을 나눠 주고는 ‘20, 30대 주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포장과 광고시안을 제시하라’는 과제를 낸 것. 제출 결과물은 이 회사가 모집한 20, 30대 주부고객 100여 명이 직접 채점했다. LG생활건강 인사 담당자는 “마케팅과 세일즈 직군은 특성상 고객의 감성을 읽어내는 소통력이 중요한데 그 능력을 고객의 눈높이에서 평가하겠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전형과정에도 대수술이 가해졌다. 공인영어시험 점수, 대학 학점, 직무적성평가 점수 등 이른바 ‘스펙’을 기준으로 지원자를 탈락시키는 방식을 폐지했다. 그 대신 ‘남자가 화장을 하는 세상이 오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스마트폰의 등장은 화장품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와 같은 정답이 없는 질문에 창의적 답변을 한 지원자는 ‘스펙’이 떨어져도 다음 단계 전형에 진출시켰다. 지원자의 글로벌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7월에는 최종 합격도 하지 않은 지원자들을 해외로 데리고 나가 3박 4일 동안 면접을 실시할 계획이다. 정 교수는 “최종 합격자가 발표되는 8월 말이면 기존 신입사원과는 여러모로 차별화되는 창의력 넘치는 인재들을 채용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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