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팔던 락희화학, 63년만에 125조 매출 글로벌LG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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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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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그룹 27일 ‘뜻 깊은 생일’
1958년 ‘금성사’ 세워 제2창업
한국 화학-전자산업 이끌며
자본금 247만배 ‘초고속 성장’


1931년 7월 경남 진양군 지수면에서 소비자협동조합 일을 맡아보던 24세의 한 청년이 경남 진주시 중앙시장에 포목상점을 열었다. 주로 비단을 판매한 이 청년은 이웃 상점에 드나드는 여성들로부터 ‘고객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여름에 비단옷을 입으려니 더워도 참을 수밖에 없어요. 겨울용 원단과 여름용 원단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어요.” “비단 무늬가 너무 단순하고 종류도 몇 개밖에 안 돼요.”

소비자의 목소리를 경청한 이 청년은 계절별로 다양한 두께의 비단과 천을 주문해 들여놓고, 각양각색의 무늬로 염색한 상품을 선보여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청년이 바로 LG그룹을 일궈낸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1907∼1969)이다. LG그룹의 ‘고객 만족 경영’은 이미 그룹 태동 이전부터 LG가(家)의 경영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던 셈이다. LG그룹이 27일로 창립 63주년을 맞았다.

포목상으로 성공을 거둔 구인회 회장은 1945년 부산으로 옮겨 화장품 판매업에 나섰고 1947년 현 LG화학의 전신인 락희화학공업사를 세워 직접 화장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창업자금을 댄 고 허만정 씨는 구 회장의 사돈(구 회장 장인의 6촌)이며 허창수 현 GS그룹 회장의 조부다.

락희화학의 ‘럭키표 크림’은 품질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불티나게 팔렸다. 1952년 생산을 시작한 플라스틱 빗도 대성공을 거뒀다. 1955년에는 국내 최초의 치약인 ‘럭키 치약’을 생산하면서 기업 규모는 날로 커졌다.

구인회 회장은 당시 경영진 일각에서 “럭키 치약의 시장 점유율이 높은데도 이윤은 많지 않으니 값싼 원료로 이윤을 높여보자”는 의견이 나오자 “얼마 안 남아도 좋으니 봉사한다는 자세로 하다 보면 럭키의 신용이 소비자의 머릿 속에 남게 되고 결국 그것이 우리가 버는 것 아니냐”며 반대했다. 구본무 현 그룹 회장이 강조하는 ‘고객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구인회 회장은 1958년 전자회사인 ‘금성사’를 설립해 새 사업에 진출했다. 1959년 국산 라디오를, 1966년 국산 흑백TV 수상기를 만들면서 금성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가전제품 제조업체로 도약했다. 현재 LG그룹의 ‘양대 축’인 LG화학과 LG전자는 이렇게 출발했다.

LG그룹은 한국 산업계에 ‘최초’라는 이정표를 여럿 세웠다. 1957년 락희화학의 공개 채용은 이전까지 혈연과 지연 등 연고 중심으로 이뤄지던 채용 관례를 깬 최초의 ‘직원 공채’였다. 대학에 추천을 의뢰해 객관적으로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는 이 방식은 이후 다른 기업들의 인재 채용에 큰 영향을 미쳤다.


락희화학은 또 민간기업으로는 최초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기업공개를 했다. 1969년 10월 8억 원 규모의 신주를 발행해 1500여 명의 새 주주를 맞았다.

자본금 300만 원으로 출발한 락희화학공업사는 1년 만에 3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2대 회장인 구자경 명예회장을 거쳐 현재의 구본무 회장으로 오면서 LG그룹의 자본금은 지난해 말 현재 7조4000억 원으로 247만 배로 늘었다. 매출액도 지난해 125조 원으로 41만 배 넘게 성장했다. 창업 당시 20여 명이던 종업원은 국내외 18만6000명으로 늘었다.

구본무 회장은 LG그룹을 ‘미래의 변화를 주도하는 기업’으로 변모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과감한 투자와 고용 확대로 미래 시장을 선점해 100년을 넘어서는 영속 기업으로 지속 성장시키겠다는 것이 구 회장의 목표다.

이를 위해 LG그룹은 올해 창립 이후 사상 최대 규모인 15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시설투자에 11조3000억 원, 연구개발(R&D)에 3조7000억 원을 쏟아 부을 계획이다. LG전자의 차세대 휴대전화와 3D TV 기술, LG디스플레이의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와 3D패널, 전자종이 기술, LG화학의 차세대 배터리 기술 등이 LG그룹이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 분야다.

구본무 회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5년에서 10년 후를 내다보고 사업의 판도를 바꾸는 기반 기술을 키워 나가야 한다”며 “새로운 분야에서도 다양한 사업 기회를 검토해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되면 과감히 투자하고 인재도 확보하라”고 강조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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