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특별기획/2009 Best Marketing]서울우유

  • Array
  • 입력 2009년 12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선명한 제조일자, 우유시장 판도 뒤집다

우유 들었다 놓았다…고객행동 자세히 관찰
“생산 즉시 출하” 선언
게임의 규칙 바꿔

서울우유는 유통기한과 제조일자를 함께 표시하는 마케팅을 전개해 고객 만족도를 향상시키고 시장의 경쟁 구도를 바꿔놓았다. DBR 사진
서울우유는 유통기한과 제조일자를 함께 표시하는 마케팅을 전개해 고객 만족도를 향상시키고 시장의 경쟁 구도를 바꿔놓았다. DBR 사진
‘제조일자 12.12. 01:00’

서울우유가 흰 우유 제품에 표기한 이 몇 글자가 시장에 지각 변동을 불러왔다. 소비자 관점에서 이런 변화는 사소해 보인다. 몇 글자를 추가로 찍은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아비즈니스리뷰(DBR)의 전문가 설문 결과, 서울우유 마케팅은 시장의 경쟁 구도를 바꾼 성공 사례로 꼽혔다. 제조일자 표시 마케팅을 주도한 서울우유 노민호 마케팅본부장과의 심층 인터뷰, 각종 자료 조사를 토대로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 아이디어의 원천은 고객 관찰

대형 마트 등에서 우유를 사는 고객을 관찰해 보니 여러 제품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소비자가 30%나 됐다. 이들은 유통기한이 며칠 남았는지를 계산해 상대적으로 신선한 우유를 사려고 이런 행동을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신선함 추구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서울우유는 잘 알고 있었다. 업체마다 유통 기한이 달랐기 때문이다. 유통 기한이 똑같이 10일 남았더라도 바로 어제 생산된 제품도 있고 5일 전에 생산된 제품도 있었다. 따라서 제조일자를 표시해주면 소비자들은 쉽게 신선한 우유를 고를 수 있다.

○ 조직 내부의 거센 반발

제조일자는 유제품 생산 업체의 기밀 사항 중 하나였다. 회사 내에서는 “현재도 제품이 잘 팔리고 있는 데다 고객들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굳이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제조일자를 밝혀서 출고된 지 오래된 제품의 경쟁력을 스스로 떨어뜨릴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됐다.

특히 생산과 유통 담당 부서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업무에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었다. 신선도 측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생산 시간대는 새롭게 날짜가 바뀌는 자정부터다. 자정부터 오전까지 최대한 많은 양의 제품을 생산해야 유통점에 신선한 우유를 배달할 수 있었다. 휴일에도 공장을 가동해야 했다. 야근과 휴일 근무의 강도가 대폭 강화될 것이 확실시됐다.

특히 ‘구조화(framing)’ 효과에 따른 제품 선호도의 차이가 극명해져 판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과학적인 반론도 제기됐다. 구조화 효과는 같은 내용의 메시지라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컵에 물이 반 차 있다고 하는 것과 반 비어 있다고 하는 것에 따라 인식이 달라지는 것은 구조화 효과 때문이다. 유통 기한이 10일이라고 가정하면(실제 서울우유의 유통 기한은 11일임), 제조한 지 5일 ‘지난’ 제품보다는 유통 기한이 5일 ‘남은’ 제품을 더 선호할 것이기 때문에 제조일자를 밝히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마케팅팀은 소비자 조사를 통해 이런 반론을 잠재웠다. 실제 조사를 해보니 5일 지났다는 정보가 알려지더라도 제조일자를 밝혔기 때문에 더 신뢰할 것이란 응답 비율이 80%에 달했다. 결국 제조일자를 표시하기로 최종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졌고 ‘생산 즉시 출하, 도착 즉시 판매’라는 슬로건하에 조직 구성원들의 인식과 행동이 변해갔다.

○ 게임의 규칙 변화

서울우유 마케팅은 시장의 경쟁 구도를 바꿔놓았다. 일부 우유업체는 유통 기한 연장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 유통 기한을 늘리면 더 오래 제품을 팔 수 있기 때문에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서울우유의 마케팅으로 시장의 경쟁 구도는 출시 후 제품을 얼마나 빨리 공급하느냐로 변했다. 유통 기한 연장에 대한 투자가 의미를 찾기 어렵게 된 셈이다.

서울우유는 구매 현장에서 소비자들이 ‘신선도’를 중시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이에 따라 마케팅 담당자들은 제조일자 표시가 고객들에게 가치를 준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됐고 이를 토대로 내부의 반발을 극복했다.

또 모방할 수 없는 차별화 전략을 선택했던 게 효과를 봤다. 서울우유는 내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조율 문제 등으로 제조일자 표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과감한 선택을 했던 이유는 유통 기한 연장에 투자했던 경쟁자의 전략 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경쟁자가 맞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것을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유도 경기에 빗대어 ‘유도 전략(Judo Strategy)’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경쟁자가 쉽게 따라오는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 실제 미국 버드와이저는 맥주에 제조일자를 표시하는 마케팅을 벌였지만 대부분 경쟁자들이 금방 모방함에 따라 효과를 보지 못했다.

김남국 기자 march@donga.com
김상훈 서울대 경영대 교수 profkim@snu.ac.kr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정지용(25·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박진영(22·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인턴연구원이 참여했습니다.

※ 이 기획 기사의 전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7호(2009년 12월 15일자)와 홈페이지(www.dongabiz.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