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BRAND]석동빈 기자의 ‘Driven’/BMW 뉴 760Li 인디비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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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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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의 ‘끝’ 더 이상 뭘 바라랴
소음제로 육박 명품 V12 엔진… 인테리어·첨단장치 호사의 극치

《‘지이잉∼∼철컥.’
BMW ‘뉴 760Li 인디비주얼’의 자동잠김 도어가 스르륵 닫히고 나면 전혀 새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우선 외부와 차단된 듯한 밀폐감에 압도당한다. 일반 자동차는 물론이고 여느 고급 세단들과도 차원이 다르다. 마치 세상으로부터 격리 수용된 듯한 그 기분이란.》실내로 눈을 돌려보면 진한 갈색 메리노 가죽시트와 검은색 알칸타라 가죽이 씌워진 천장, 하이테크 분위기의 각종 불빛과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들이 럭셔리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BMW는 ‘특별한 공간에 들어왔다’는 느낌을 강요하는 듯하다.

럭셔리 브랜드의 대형 세단, 그중에서도 최고등급 모델은 특별하다. V12 터보차저 엔진이 내뿜는 슈퍼카 수준의 파워와 호사스러운 인테리어, 웬만한 자산가라도 감당하기 만만치 않은 자동차 가격과 감가상각비는 부(富)와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존재한다.

BMW가 메르세데스벤츠의 ‘S600’과 대결하기 위해 새롭게 내놓은 760Li를 타고 달려봤다.

○ Why? V12


최고여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기술로는 V8 엔진으로도 정숙하면서 500마력 이상의 출력을 뽑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런데 왜 아직도 V12를 넣을까. 상징성과 엔진의 비단결 같은 회전감성 때문이다. 엔진 1행정에 12개의 실린더가 점화되며 회전축을 돌리는 부드러움은 V8과는 급이 다르다. 게다가 직렬 6기통 엔진 두개를 V 모양으로 맞붙여서 만드는 V12는 부품 수가 많아서 제작 단가가 높다.

출력도 높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부드러움을 위해 훨씬 비싼 엔진을 만든다니. 어떻게 보면 V12는 자동차용으로는 비효율적인 엔진일 수도 있다. 바로 그 점이 명품 자동차에 V12가 채택된 이유다. 일부러 자동차를 비싸게 만들기 위해 V12를 넣었다는 뜻도 된다. 명품만큼 비효율적인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V12는 힘과 럭셔리의 상징이다.

BMW 6.0L V12 엔진은 터보차저라는 날개까지 달아 최고 출력 544마력, 최대토크 76.5kg·m이다. 힘없다고 놀림 받았던 이전 모델의 설움을 깨끗하게 털어냈다. 최대의 경쟁모델인 S600보다 출력에서 앞선다. 덕분에 760Li는 0→시속 100km를 단 4.6초 만에 돌파한다. 실제 측정에서 4.7초로 제원과 거의 같았다. 0→시속 200km는 14.7초 만에 해치웠다. 그러면서도 엔진은 전혀 힘들어하지 않는다. 그렇게 급가속을 해나가면서도 엔진은 절제된 최소한의 소음만 실내로 들여보낸다.

○ 움직이는 응접실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V12 엔진 특유의 낮고 부드러운 시동음이 잠깐 들린 뒤 차 안은 적막에 빠져든다. 옷깃이 스치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로 접어들면 외부 풍경은 이질감이 느껴진다. 도로 위에 있지 않고 고층빌딩에서 멀리 창밖으로 내려다본 도로 같다고나 할까. 바로 옆을 지나는 버스의 커다란 디젤엔진 소리도 작게 들린다. 두꺼운 2중 유리와 차의 곳곳 들어찬 100kg이 넘는 방음재는 차 안을 전혀 딴 세상으로 만들어 준다.

시내 주행에서 부드럽게 달리면 엔진은 웬만하면 1500RPM을 넘지 않는다. 시속 100km에서는 차가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 느낌 정도이고, 시속 200km에서도 일반 중형차가 시속 120km 정도로 달리는 기분이다. 제법 빠르게 달리고 있다고 해도 옆좌석에 앉은 동승자는 물론 뒷좌석에 탄 사람과도 소곤거리듯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제한속도에 맞춰 고속도로를 달릴 때 뒷좌석에 앉아 있으면 편안함에 스르륵 눈이 감긴다. 어느 정도 커브길을 달려도 차체는 수평을 유지하며 몸을 쏠리게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차의 움직임에 의해 생각을 방해받지 않는다. 손으로 주무르듯 이곳저곳을 시원하게 해주는 마사지 기능까지 작동시키면 ‘내가 차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 독일차 정통성 지키는 BMW

760Li의 승차감은 편안하긴 하지만 마냥 부드럽지는 않다. 요철 도로를 만나면 “나 독일산이오”라고 말하듯 제법 단단한 서스펜션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휠도 20인치에 타이어 편평비는 35%에 불과하다. 이런 세팅은 고성능 중형 스포츠세단 같은 손맛을 느끼게 한다. 큰 덩치라고 생각들지 않을 정도로 코너워크가 뛰어나다. 오히려 너무 빠르게 반응해서 어색할 정도다.

아무리 뒷좌석 승차감을 우선으로 하는 플래그십 세단이라도 운전의 재미를 양보할 수 없다는 BMW의 의지가 반영됐다. 평소에는 기사에게 운전대를 맡기지만 간혹 오너가 직접 운전할 때 스포츠카를 모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겠다는 이야기다. 렉서스 스타일로 ‘변절’한 벤츠와는 다르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고나 할까.

5212mm에 이르는 긴 차체를 드리프트 주행으로 몰아보면 해답은 더욱 명확해진다. 차체가 길고 서스펜션이 부드러우면 흐느적거리며 원하는 대로 방향을 잡아가기가 쉽지 않지만 760Li는 스포츠카인 양 운전자의 의도를 충실히 따라준다. 운전대를 돌렸다 감았다 하며 미끄러지는 각도를 유지시킬 때 그 피드백은 상당히 빨라서 ‘이것이 과연 대형 세단의 몸놀림인가’ 하는 감탄을 자아낸다.

○ 최고의 럭셔리를 위한 대가는 엄청나


차선 이탈 방지 장치, 사람 인식 기능이 포함된 나이트비전, 헤드업 디스플레이, 백업 카메라 및 사이드 뷰 시스템, 인티그럴 액티브 스티어링, 어댑티드 헤드라이트 등 첨단 장치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재봉선이 고급 핸드백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가죽시트, 최고급 우드트림, 뒷좌석 전용 ‘iDrive’와 모니터, 뒷좌석 냉장고 등이 호사스러움을 더한다.

그만큼 가격도 최고 수준이다. 시승한 모델은 2억7700만 원이고, 등록비용을 합치면 뒷좌석에 앉는 데 3억 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3년 뒤엔 중고차 값이 절반 정도로 떨어진다. 거기다 유지비까지 합치면 새차로 760Li를 구입한 사람은 초기 3년간 매년 7000만 원 정도가 들어가는 셈이다.

연료소비효율은 어떨까. BMW에선 유럽연합(EU)기준으로 L당 7.7km라고 하지만 실제로 적당히 정체되는 서울시내를 주행해본 결과 L당 3km에 불과했다. 교통체증이 심한 곳을 지날 때는 L당 2.5km까지 떨어졌다. 브레이크 에너지 재생기술이 들어갔다고 하지만 소형 디젤차의 3배에 이르는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반환경적인 차를 운행하는 데 대한 심리적인 면죄부만 주는 역할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나 고속주행 연비는 배기량에 비하면 합리적인 편이다. 시속 100km로 정속주행할 때는 L당 10.5km 안팎으로 나왔다. 물론 이처럼 열악한 연비는 760Li뿐만 아니라 동급의 럭셔리 세단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비애다.

760Li는 최신 모델인 만큼 출시 3년이 넘은 S600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약간씩 앞선다. 하지만 3억 원이 필요한 럭셔리카는 성능이나 경제성보다는 그 차가 가지는 상징성이나 구입자의 취향이 우선한다. 왕좌를 지켜온 S600과 어떤 대결을 펼쳐나갈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 2000년대 들어서는 최고급 자동차의 진화가 멈춘 듯한 인상이다. 엔진 출력과 연비가 조금 개선되고, 없어도 그만인 첨단 장비들이 주렁주렁 달리는 정도다. 주행감각의 진화는 거의 없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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