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新버블… “투기가 세계경제 회복 발목”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24일 03시 00분


원유-금-구리 등 원자재 2배이상 뜀박질… 곡물가 사상 최고치
“저금리 美달러가 투기 원인”… 각국 출구전략 시기 고민

미국 달러화를 제외한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자산 가치가 급등하고 있다. 불과 1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심각한 ‘자산 디플레이션’ 현상을 겪은 것과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각국의 주식과 채권 값을 비롯해 원유, 금, 비철금속, 곡물 등 대부분의 원자재 값이 들썩이고 있다.

세계 금융계는 올 하반기 들어 부쩍 두드러지기 시작한 이 현상을 2000년대 초반의 닷컴버블,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선진국의 부동산 버블과 구분해 ‘신(新)버블’이라 부른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고용과 투자 등 실물경기가 정상화되지 않은 판국에 자산가격이 치솟자 정책 방향을 잡지 못하고 깊은 딜레마에 빠졌다. 유럽과 아시아의 일부 국가에선 버블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출구전략에 돌입했다.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비철금속의 대표 격인 구리 가격(현물)은 20일 현재 지난해 말 2900달러의 두 배가 넘는 6730달러까지 올랐다. 온스당 1140달러 선까지 뛴 금값도 곧 1200달러를 돌파할 것이 유력해 보인다. 원유(두바이유 기준) 가격은 올해 113% 치솟았고 홍차, 코코아, 설탕 등 주요 기호식품과 농산물 값도 수십 년 새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 국한됐던 주식, 부동산 가격 상승도 이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 주요 지수의 상승률은 올 2월 이후 30∼40% 수준에 이른다. 영국의 평균 집값은 올해 들어 1만 파운드(약 1910만 원) 이상 올랐고 미국 20대 도시 집값도 오랜 조정을 지나 최근 상승 추세로 반전했다. 미국이 당분간 제로 금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시사하면서 각국의 채권 값도 큰 폭으로 상승(채권금리는 하락)하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내년에는 국제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고 석탄, 알루미늄 가격도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상품 가격의 상승은 과거와는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다. 2007년 국제유가의 급등은 원유 생산지의 기후변화 및 지정학적 불안, 개발도상국의 수요 증가에서 비롯됐고 2008년 국제 곡물가격 상승도 옥수수 등 일부 농산물을 바이오에너지로 쓰면서 나타난 수급 불균형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최근 원자재 값 급등의 배경엔 수요 공급상 요인이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그보다는 글로벌 저금리 기조 및 달러화 약세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제 값싼 달러를 들고 투자 위험이 높은 각종 글로벌 자산을 매입(달러 캐리 트레이드)하고 있다. 원자재가 단순한 생산원료에서 높은 매매 차익을 위한 투기 대상으로 바뀌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자 미국의 저금리 기조에 대한 불만이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은 2000년대 중반에도 저금리 정책을 너무 오래 끌어 금융위기를 촉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류밍캉(劉明康) 중국은행감독위원회 주석은 “미국의 저금리 정책이 국제적 투기의 원인이며 세계 경제에 극복하기 힘들 정도의 큰 위험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달러화 약세로 글로벌 자산버블 위험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 버블이 과거와 같은 형태일 것이라고 믿는 건 순진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세계 각국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원래 각국 중앙은행들은 실물경기의 뚜렷한 회복을 확인한 뒤 출구전략을 쓰려고 했지만 버블 우려로 바로 이를 단행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빠졌다. 출구전략의 글로벌 공조 전략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모습이다.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최근 “종전 수준의 유동성 공급은 필요치 않으며 금융기관들은 중앙은행의 출구전략 시행에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ECB의 이 같은 정책기조 전환 움직임에 지난주 유럽 증시는 나흘 연속 약세를 보이기도 했다. 중국은 금리 인상 대신 금융기관 대출 축소라는 우회적인 카드를 쓰고 있다. 중국 은행들의 10월 신규 대출은 2500억 위안(약 42조5000억 원)으로 전달의 절반 수준까지 줄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