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 때문에 사표 안던지게…” 공단에 명문高 설립 박차

  • 입력 2009년 10월 13일 02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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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공단 직원 23% ‘기러기’
지자체-입주업체 머리 맞대
울진-인천-월성서 잇단 공청회

경북 구미공단 안 LG전자 TV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김모 부장은 요즘 금요일 오후면 거의 어김없이 컴퓨터를 켜고 서울에 있는 아내, 고1 아들과 화상 통화를 한다. “일이 밀려서 가지 못한다. 주말에 아빠가 없어도 잘 지내라”라는 것이 그가 늘 하는 말이다.

김 부장과 같은 ‘국내 기러기 아빠’는 최근 전국 공단에서 부쩍 늘어났다. 구미시와 대구경북연구원이 9월 200명의 공단 임직원을 조사한 결과 22.5%가 기러기 아빠였다. 엄상섭 구미시 총무과장은 “최근 LG전자 LCD TV 연구인력 600명이 올해 경기 평택과 서울 본부로 옮겼다”며 “근무지 이동의 주요한 원인은 자녀 교육 문제였다”고 전했다. 초중학교 자녀를 둔 젊은 직원들을 보면 구미공단을 회피하는 성향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엄 과장은 “수도권에서 지방 공단으로 발령을 내면 수도권에 있는 경쟁기업으로 직장을 옮기는 젊은 직원이 많아 지방 연구인력 센터의 업무 공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와 공단에 입주한 산업체는 이 같은 국내 기러기 아빠와 그 피해를 막기 위해 공단지역에 명문고를 세우는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구미공단 울진원자력공단 인천국제공항공사 월성공단 등은 이달 초부터 지자체와 공동으로 신흥 명문고 설립을 위한 공청회를 여는 한편 지역 연구소에 명문고 설립 연구 용역을 맡기고 있다.

○ 국내 기러기의 열악한 교육환경

최근 구미시의 설문조사 결과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공단을 떠나고 싶다’고 응답한 임직원은 전체의 70.5%였다. 공단에서 일하는 산업체 임직원 3분의 2 이상이 직장과 가까운 곳에서 자녀를 맡길 만한 학교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구미시 26개 고교 가운데 공립은 21개교. 한 학생은 “대부분 공립고 교사들의 생활 근거지가 대구이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학생을 돌볼 틈 없이 귀가하기 바쁘다”고 말했다.

지방 사립고도 산업체 임직원의 기대 수준을 밑돌고 있다. 구미시내 A고교는 매년 정부로부터 재정결함 보조금을 20억 원씩 받고 있지만 법인이 내는 돈은 600만 원에 불과했다. 사립고 재정 형편이 어려우면 우수한 교사를 초빙하거나 다양한 교과 과정을 개설하기 어렵다.

○ 공단의 염원으로 떠오른 명문고

이번 공청회에 나온 공단들은 한목소리로 지역 명문고를 원한다고 했다. 명문고 연구 용역을 맡은 대구경북연구원 이종웅 객원연구원은 “명문고가 지방 공단 근무 기피와 산업 공백을 막는 유일한 대안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명문고 설립과 운영 기금 출연에 대한 생각은 지역 주민과 기업체 의견이 비슷했다. 기업 단독으로 사립고를 설립하기보다는 지자체 시민 기업이 공동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기업과 지자체가 공동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학교 설립 모델과 운영 방안에 대해서는 지역별로 편차가 났다. 입주 업체가 많은 구미공단의 경우 추첨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자율형 사립고를 선호했다. 반면 한국수력원자력 임직원이 대다수인 울진공단의 경우 포항제철고와 같은 자립형 사립고를 선호했다. 지역 학생을 우선 선발하고 나머지를 전국 단위로 모집하는 학교 모델은 지역 주민이나 산업체가 공동으로 바랐다.

구미시 공무원들은 “학교 설립 터를 공단에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며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오면 공단 입주업체들과 학교 설립과 운영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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