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고생 개미들 원금 되찾자 ‘증시 대탈출’

  • 입력 2009년 7월 26일 18시 47분


2006년 초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던 회사원 권 모(28·여) 씨는 지난 주 펀드 환매신청을 했다. 한 때 이 펀드의 수익률은 50%에 육박했지만 금융위기로 -40% 이상까지 추락한 뒤 지난주에야 가까스로 다시 플러스로 반전했다. 펀드투자 3년 반 만에 거의 아무런 수익 없이 약 500만 원의 원금만 가까스로 챙겨 나온 셈이다. 권 씨는 "투자원금을 찾기까지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다"며 "1년 간 마음 고생한 게 너무 쓰려서 당분간은 신규 투자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 증시가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이 주식 및 펀드 투자에서 속속 발을 빼고 있다. 펀드시장에선 4개월 째 자금이 대량으로 빠져나가고 있고, 증시에서도 개인들의 매도세가 거세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개인투자자들의 행보가 아직 펀드런(대량 환매)이나 주식 투매로 부를 만큼 심각한 자금 유출 현상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이제 막 1,500선을 회복한 증시의 향후 흐름에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친 개미들, 주식은 팔고 펀드는 환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23일까지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ETF 제외)에서 6209억 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월별 자금유출 규모로는 2007년 4월(-2조6266억 원) 이후 2년 3개월 만에 최대치다. 국내 주식형 펀드엔 코스피가 유동성 랠리를 시작한 3월만 해도 900억 원 가량의 자금이 순유입됐지만 상승장이 본격화된 4월부터 순유출로 전환돼 이후 약 4개월간 1조2000억 원이 빠져나갔다.

주식 시장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24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은 3조140억 원에 이르는 주식을 순매도했다. 올 4~5월 2조4000억 원에 이르는 주식을 순매수한 것과 전혀 반대의 양상이다. 특히 개미들은 코스피가 2.7% 급등한 20일엔 거래소가 집계를 시작한 1998년 이래 최대 규모인 9238억원을 순매도했다.

개미들의 '발빼기 전략'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의 경우 본격적인 강세장이 한창 진행됐던 2007년 5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28조 원이 순유입됐고, 특히 코스피가 1700~1800대 중반에서 움직였던 2007년 6~8월에만 13조1174억 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이 때 펀드에 투자한 뒤 아직 투자 본전을 찾지 못한 상당수의 투자자들이 앞으로 증시 흐름에 따라 환매 대열에 대거 합류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장기화되면 향후 증시에 큰 부담

만약 개인들의 증시 이탈이 장기화된다면 시장 수급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한 자산운용사의 주식운용본부장은 "지수가 1,400선에 올라선 즈음부터 펀드 투자자들의 환매가 꾸준히 발생했다"며 "투자자들이 돈을 내놓으라고 하면 운용사로서는 갖고 있는 주식을 팔 수 밖에 없어 증시에 부담을 준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부터 이달 24일까지 투신사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약 2조 원 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결국 최근의 강세장은 기관과 개인이 모두 빠진 채 순전히 외국인들의 압도적인 주식매수세에 의존했던 것으로, 앞으로 국제 금융시장이 다시 흔들리고 외국인 매수세가 약해지면 증시가 큰 조정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산운용사 등 업계에서도 고객들의 펀드환매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운용사별로 환매 규모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다만 아직은 자금유출 규모가 5조8000억 원 이상이 빠져나갔던 2007년 2~4월 당시와 비교하면 훨씬 적다는 데 안도하고 있다.

이계웅 굿모닝신한증권 펀드리서치 팀장은 "올 하반기엔 상반기만큼의 가파른 상승장이 오진 않을 것이란 인식으로 환매 물량이 나오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지수가 크게 하락할 가능성 역시 높지 않은 만큼 오래 전부터 적립식으로 투자해 온 투자자들은 갖고 있는 펀드를 대량 환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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