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와 기념사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자동차공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자동차 업계가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불합리한 노사관계를 타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윤 부회장이 “미래 대비를 소홀히 해서 위기에 처한 미국의 ‘빅3’ 회사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그날 헤드 테이블에 있었던 마이클 그리말디 GM대우자동차 사장에게로 눈길이 갔습니다. GM대우차의 모회사인 GM이 ‘빅3’ 중 한 곳이죠. 그리말디 사장,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속으로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겠지요. 그는 기념사와 축사를 모두 일일이 통역을 통해 듣고 있었습니다.
축사를 한 임채민 지식경제부 차관의 당초 원고 내용도 상당히 ‘셌습니다’. 지경부가 전날 배포한 사전 원고에는 “노사 간 불합리한 관행들을 답습해서는 결코 세계 최고 자동차 업체의 대열에 합류할 수 없으며, 노사 간 대립에 기초한 고비용 구조로 파산 위협에 직면한 미국 ‘빅 3’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임 차관은 실제로 이 부분을 읽지는 않고 다만 “상생의 문화가 자동차 산업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만 말했습니다. 자리에 있었던 그리말디 사장을 배려해 수위를 낮춘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말디 사장만 속이 쓰렸겠습니까. 이날 행사에 참석한 자동차회사 최고경영자(CEO)들 모두 최근의 위기 상황에서 맞는 ‘축하 행사’가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은탑산업훈장을 탄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이 잠시 웃음을 보였던 것 외에 이날 CEO들이 또 웃음을 보인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내년 5월 ‘7회 자동차의 날’ 행사가 열릴 때쯤이면 상황이 나아질까요.
장강명 산업부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