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상승 업고 ‘逆샌드위치’로 불황탈출”

  • 입력 2009년 3월 10일 02시 57분


품질은 日에, 가격은 中에 밀리던 샌드위치 한국기업들

원화가치 하락으로 가격 경쟁력 크게 높아져

삼성-LG전자 LCD TV 해외시장서 반사이익

광케이블-게임기 부품 등 공급 계약도 잇따라

꾸준한 기술 투자로 일본 기업들을 추격해 온 한국 기업들이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을 등에 업고 ‘역(逆)샌드위치’ 효과를 누리고 있다.

그동안 한국 제품은 “품질은 일본에 뒤지고, 가격은 중국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샌드위치 신세에 비교돼 왔다.

그러나 원화가치가 크게 하락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높아지자 세계시장에서는 엔고(円高)로 터무니없이 비싸진 일본 제품이나 품질이 떨어지는 중국 제품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 지금이 시장점유율 확대 기회

7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550원으로 지난해 3월 7일(949원)보다 63.3%나 올랐다. 1000원짜리 물건을 수출한다면 지난해 3월에는 1달러가 넘었지만 현재는 0.65달러 미만이기 때문에 해외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원-엔 환율도 같은 기간 70.5%가 올랐다.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최근 “지금이 1등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 시기(환율 수혜)를 놓치면 일본과 유럽 기업이 다시 돌아와 더 힘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본보 2일자 B4면 참조 LG 남용 부회장 “환율 덕보는 지금이 1등 기회”

지난해 세계 액정표시장치(LCD) TV 시장에서 처음으로 3위에 오른 LG전자는 올해 LCD TV 판매 목표량을 전년 대비 50%나 높게 잡았다. 실제 1, 2월 해외 대부분 지역에서 목표치를 달성했다.

이는 치열한 글로벌 판매 순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일본 소니(2위)와 샤프(4위)가 엔고로 부진을 겪고 있는 데 따른 반사이익도 컸다.

TV 시장 1위인 삼성전자도 올해 LCD TV 목표 판매량을 전년 대비 10% 많은 2200만 대로 잡았다. 올해 판매 목표를 지난해보다 오히려 줄인 소니와 격차를 확실하게 벌릴 찬스라는 것이 삼성 측 생각이다.

○ 대규모 사업수주 잇달아 성공

LS전선은 올 들어 유럽과 아시아 지역 주요 통신사업자들과 총 7000만 달러(약 1085억 원)어치의 광케이블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9일 밝혔다. 베트남 1위 통신사업자인 비에텔(3000만 달러), 영국 1위 케이블TV 사업자인 버진미디어(1500만 달러) 등이 모두 LS전선에 광케이블 공급을 맡겼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금융 측면에서의 부담은 있지만 환율 상승은 사업 수주에서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올해 광케이블 해외 부문 매출 목표를 지난해 대비 60% 이상 늘려 잡았다”고 말했다.

동부하이텍은 대만 반도체 업체들보다 우월한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중국 시장 CMOS 이미지센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가공) 물량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이달 수주 물량이 1월 대비 2배 이상으로 늘었고 5월에는 다시 이달의 2배 정도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동부제철도 지난해 음료용 캔에 쓰이는 석도강판(철판)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 포스코도 1월 일본 회사들을 제치고 도요타자동차와 강판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10월 발광다이오드(LED) 종주국인 일본에 LED 조명 납품계약을 따낸 삼성전기는 원화 약세를 발판으로 일본의 게임기 부품 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2007년 말부터 공급하고 있는 ‘닌텐도 Wii’용 리니어 모터(손에서 진동을 느끼도록 하는 장치)의 수출 증가량이 올해는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회사는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기 관계자는 “꾸준한 기술개발로 품질을 높여왔고 최근 엔고와 원화가치 하락이 겹치면서 일본시장의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도 와이브로(Wibro·모바일 와이맥스) 장비 및 기술 수출을 이른 시간 내에 확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현재 미국, 일본, 러시아 등 23개 사업자와 시범 또는 상용서비스 계약을 했고 10여 개국 20여 개 사업자와 추가로 장비공급 계약을 협의 중이다. 루슨트테크놀로지, 모토로라 등 경쟁사보다 싼 가격으로 장비공급이 가능해지면서 이 부문 세계 표준화를 주도하고 있는 기술력이 ‘날개’를 달았다는 평가다.

○ 중소기업들도 기회는 있다

미국에 혈액 검사용 채혈침을 수출하는 의료기기 제조업체 G사는 역샌드위치를 수출 전략에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지난해는 멜라민 파동을 겪으면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점을 이용해 안전성과 품질이 월등하다는 사실에 마케팅 초점을 맞췄다. 이후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가 급속히 하락하면서 대미 수출 환경은 더욱 유리해졌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의료기기 수요가 많은 플로리다 주 소재 바이어를 중심으로 지난해 8월 이후 예년 대비 대미 수출액이 30%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기업들이 환율 변동으로 큰 이득을 보고 있다고 판단한 해외 바이어들이 수출 조건 등의 수정을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해외 바이어들이 우리 업체들이 환차익을 많이 누린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에 따른 요구가 커지고 있다”며 “저평가된 원화가 호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다른 환경적 변화 등도 사전에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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