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때보다 상황 나쁜데 침착하다 못해 안이”

  • 입력 2009년 3월 5일 02시 58분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같은 경제 위기에 패자는 필멸(必滅)하게 되어 있다”며 “지금 한국사회는 침착하다 못해 안이한 것 같다”고 우려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같은 경제 위기에 패자는 필멸(必滅)하게 되어 있다”며 “지금 한국사회는 침착하다 못해 안이한 것 같다”고 우려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이수영 경총회장 인터뷰

“10년전엔 수출로 버텼지만 지금은 힘들어

금융부문 선진화-기업 체질 개선 서둘러야

회사 고용유지 노력 정부-국민 알아줬으면”

“1997, 98년의 외환위기 때는 위기의 실체에 비해 국민의 위기의식이 너무 컸던 반면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는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한데도 국민의 체감 위기의식은 오히려 덜한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 전반의 둔감한 위기의식’에 강한 우려를 쏟아냈다.

이 회장은 “예전에는 ‘승자 독식(獨食)’시대였지만 지금은 ‘패자 필멸(必滅)’시대”라며 “글로벌 차원에서 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대부분의 한국 기업도 필사적인 생존전략을 펴고 있는 것은 패하면 죽는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제 5단체장 중 한 명인 그의 진단은 ‘겨울이 왔으니 봄이 머지않았다’는 정부 당국의 시각과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일부 강성 노조가 ‘생산 감소로 줄어든 소득을 보전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얼마나 위기 상황에 둔감한 것이냐”며 “한국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너무 침착하다 못해 안이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든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현재의 위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한 이유를 진지한 표정으로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외환위기 때는 미국 유럽의 수요가 살아 있었고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브릭스(BRICs) 국가가 급성장해 이를 토대로 한국 경제가 빨리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총체적 수요 감소로 수출 판로(販路)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최근의 고(高)환율 문제도 외환위기 때와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외환위기 때는 환율 급등으로 수출이 대폭 증가하면서 한국이 위기를 극복하는 기반이 됐지만 지금은 정부의 고환율 정책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급감하고 있다”며 “고환율이 물가상승의 원인이 돼 서민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인위적 감원(減員) 같은 기업의 고용 조정은 위기 극복의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자리는 가계와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기초적인 사회안전망입니다. 대량 실업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국내 기업이 노사 합의로 임금을 동결 및 삭감하는 대신 근로자의 고용유지를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기업 경영이 어려운 위기 상황에서도 (기업들이) 고용유지를 선언하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기업으로서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정부나 국민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이슈가 된 ‘잡 셰어링(Job Sharing·일자리 나누기)’에 대해 “일자리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 모두 고통과 고민을 분담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온 국민이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감내하겠다는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특히 이 회장은 “그런 수준(일자리 나누기)에서 이번 위기가 극복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면서도 “그러나…”라며 말끝을 흐렸다. 더 나쁜 상황에도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읽혔다.

이 회장은 “경제위기로 인해 정규직마저 고용 유지가 어려운 현실에서 계약기간이 만료된 기간제 근로자(비정규직)를 정규직화하기는 대단히 어렵다”며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하나의 일자리라도 노사 공동의 노력으로 지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위기 극복과 관련해 ‘정부와 국가가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란 생각과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재정지출 확대나 감세 정책 등이어서 한국 경제가 (국내에서) 기댈 언덕이 별로 없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며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 국민 모두 비장한 각오로 경제기반을 튼튼히 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세계화를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낙후된 금융 부문을 (이번 기회에) 선진화하고,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합니다. 국민의 힘을 결집해 한국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 ‘가장 멀지만 가장 확실한 위기 극복의 길’입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이 회장이 제시한 위기 극복의 해법은 단순해 보였지만 그 실천이 결코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