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똑똑한 체하는 지도자, 조직 사기 떨어뜨린다

  • 입력 2009년 2월 14일 02시 58분


조선시대 임금들은 언제나 ‘세종실록’에 있는 글귀를 외우고 그 규례를 적용했다. 말하는 법과 일처리 방식에서 뛰어났던 세종대왕을 배우기 위해 먼저 그의 어록을 외웠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뛰어난 리더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 한국인의 마음을 떨쳐 일으킬 수 있는 지도자가 아쉽다고 한다.

인재의 열정에 불씨를 지피고 군주의 길을 밝힌 역사 속의 탁월한 어록을 통해 ‘한국형 리더십’의 원형을 발굴하고 참된 리더와 리더십을 발견해 보자.

“한 사람의 총명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군주가 스스로의 총명만을 믿는다면 여러 사람의 총명을 수렴할 수 없고, 그 아랫사람들이 속마음을 다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군주 자신의) 밝음이 도리어 밝지 못함이 되는 것입니다. (군주 자신의) 밝음을 사용하면 비록 작은 곳은 밝겠지만 큰 곳은 어둡게 됩니다. 따라서 모름지기 밝으면서도 감춤을 사용한 연후에야 크게 밝음이 되는 것입니다.”(영조실록 중에서)

이 인용문은 영조 초년의 경연(經筵)에서 시독관(侍讀官) 윤동형이 주역(周易) 명이괘(明夷卦) 부분의 ‘군주의 총명’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명이괘는 곤(坤)이 위에 있고 이(離)가 아래에 있는 괘다. 밝음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나타낸다. 이 말은 ‘겉으로 이롭게 보이는 것이 곧 어려움을 예고한다’는 의미다. 똑똑한 체하는 지도자가 오히려 조직을 망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는 말로 풀이된다. 흔히 얘기하는 ‘최고지도자가 너무 똑똑하면 일이 잘 안 된다’는 뜻이다.

영조는 신하들을 자꾸 가르치려 하는 태도 때문에 비판을 많이 받았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정언 유언협은 “전하께서는 가르칠 신하를 좋아하고 가르침을 주는 신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최고지도자는 모름지기 자신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자를 신하로 삼기 좋아해야 한다. 하지만 영조는 경연 석상에서 너무 말을 많이 하거나 스스로 총명한 체해서 좋은 말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을 들었다.

맹자 또한 “장차 크게 될 임금은… 자신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자를 신하로 삼기 좋아하고, 자신이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자를 신하로 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위의 인용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군주 자신의 밝음을 사용하면 작은 곳에는 밝겠지만 큰 곳에는 어둡다’는 말이다.

정말로 지혜로운 지도자는 ‘밝으면서도 감춤을 사용’하며 그래야 ‘진짜로 밝아진다’는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그런 리더야말로 ‘어두운 듯해도 오히려 밝은(用晦而明)’(성종실록 중) 지도자라 할 수 있다. 얼핏 보기에는 낮에 더 잘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 밤에 더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연구실장

- 큰 밝음은…때로 작은 것에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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