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나누기 효과 임금피크제 잘못 쓰면 약 아닌 독

  • 입력 2009년 2월 6일 02시 58분


“일 더해도 임금 제자리” 의욕 뚝

실적따라 연봉조정 동기부여 꼭

대한전선은 2003년 말 업계 최초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화제가 됐다. 생산직을 대상으로 51세부터 임금이 동결되는 형태였다.

제도가 시행되자 51세가 넘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일을 더 해도 임금이 오르는 것도 아닌데 대충대충 일하자’는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됐다.

결국 대한전선은 56세까지는 임금이 오르고 57세부터 임금이 매년 5%씩 줄어드는 형태로 2007년 운영방식을 바꿨다.

○ 제대로 준비 안 하면 낭패

고용시장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임금피크제가 ‘일자리 나누기’의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제도가 널리 도입되면 기업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지킬 수 있어 양쪽 모두 좋다고 옹호론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실시 중인 기업들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쉬운 제도”라며 “치밀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당사자들에게 계속 동기 부여를 해줘야 한다는 점이다.

2006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한국자산관리공사는 대한전선보다 더 심한 부작용을 겪었다.

이 제도를 적용받는 나이가 돼도 업무는 그대로 유지하는 대한전선과 달리 이 회사 직원들은 그 시점에 신분이 별정직으로 전환되면서 보직도 바뀌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경험 많은 상위직을 보직해임하면서 특별한 직무를 부여하지 않아 결과적으로는 이들이 월급은 받으면서 회사에 나와 일 없이 놀게 됐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은 박탈감에 시달리고 젊은 직원들도 불만이 생기는 구조였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제도 시행 2년 만인 지난해 임금피크제를 개선하면서 고령 직원이 할 일을 만드는 데 초점을 뒀다. 고객 관리와 소송 업무를 하도록 했고, 성과 평가도 실시해 실적에 따라 연봉을 달리 받을 수 있게 했다.

○ 임금역전 조직 내 갈등 부르기도

임금피크제에 따른 인건비 절감 효과는 생각만큼 크지 않고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비용 압박이 생긴다는 지적도 있다.

숙련 직원의 노하우를 확보하거나 조직 전체에 미치는 효과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건비를 줄이는 데만 주안점을 두면 실패하기 쉽다는 얘기다.

2007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LG전자 관계자는 “임금피크에 이른 직원은 이미 신입사원 임금의 3배 정도를 받는 상태”라며 “비용만 본다면 정년 때까지 몇 년간 이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보다 신입사원으로 대체하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또 고령 직원들이 보직 이동으로 연배가 낮은 직원들의 지휘를 받게 되면서 생기는 갈등도 문제. 2004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가 3년 만에 폐지한 한국감정원도 폐지 이유 중 하나로 ‘조직 내 상하관계 역전’을 들었다.

김익성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인사조직 BU장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때에는 직원들의 조직몰입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고령 직원을 위한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면 효과가 더 있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은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12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특별세미나를 열 예정이다. 02-3786-0458

:임금피크제:

기업이 일정 나이를 넘긴 직원의 임금을 줄이거나 동결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거나 정년을 연장하는 제도. ‘일자리 나누기’의 한 방법이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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