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법정관리 신청 기업 작년 104개사 사상최대

  • 입력 2009년 1월 15일 03시 01분


본보 전수조사… 의류 등 소비업종 크게 늘어

위안화 급등 ‘이중고’ 中진출기업 30곳 포함

1999년 설립된 가구 생산업체인 P사는 고급 맞춤가구 위주의 틈새시장을 공략해 한국과 일본의 주요 호텔에 납품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2003년에는 중국 칭다오(靑島)에 공장을 세웠고 2005, 2006년 칭다오 자오저우(膠州) 시 주관 10대 외자기업에도 선정됐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중국 정부가 새로운 노동계약법을 시행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중국 노동자의 종신고용 보장과 퇴직금 지급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이 법으로 임금 부담이 15% 넘게 커진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반기엔 글로벌 금융위기로 위안화가 급등하는 바람에 금융비용이 크게 늘었다. 은행들이 돈줄을 죄면서 P사는 결국 지난해 11월 법원에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P사 관계자는 “한때 매출이 연간 100억 원을 훌쩍 넘었지만 지난해 매출이 40억 원대로 급감했다”며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 가운데 환율 관리를 못한 중소기업들의 타격이 커 상당수 업체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P사처럼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법원에 회사를 살려 달라며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이 지난해 급증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동아일보가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을 전수(全數)조사한 결과, 신청 건수는 110건(신청 기업 수 104개)으로 2007년(29건)의 3.8배에 이르는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이 가운데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해 4분기(10∼12월)에 신청된 건수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50건(45.4%)에 달했다.

법정관리 신청 기업(104개) 중 상장기업은 4곳뿐이었고, 나머지는 상당수가 자산이 100억∼200억 규모의 비상장 중소기업이었다. 이 가운데 중국에 공장을 두고 있거나 투자를 했다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업체는 30곳이었다.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 중 가장 큰 곳은 자산이 6600억 원대인 신성건설이다.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한 뒤 환차손을 입고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도 적지 않다. 지난해 상반기 114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고도 2800억여 원의 키코 피해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태산엘시디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밖에 부동산 등 자산이 팔리지 않아 유동성 위기를 맞은 기업이나 건설업, 의류 섬유 같은 경기에 민감한 업종의 회사들이 줄줄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법정관리 신청 기업 중 건설·부동산 관련 업체가 24개로 가장 많았다. 기계·금속(12개), 도·소매(11개), 전기·전자(11개) 의류·섬유(10개), 식료품(4개) 등이 뒤를 이었다. 올해 들어서도 14일 현재 쌍용자동차를 비롯해 7개 업체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황.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이용운 판사는 “경기 영향을 가장 많이 타는 건설 업종의 기업 회생절차 신청이 많이 들어왔고, 예년에는 별로 없던 의류 및 식료품 업체들도 눈에 띄게 늘어 소비 위축이 심화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박승현(28·성균관대 영상학과 4년), 권숙희(23·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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