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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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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증시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에 빠졌다. 7일 뉴욕 증시 대폭락 이후 열린 8일 아시아 증시는 20년 만에 최악의 폭락세를 기록한 도쿄 증시를 필두로 서울, 상하이, 홍콩, 자카르타, 뭄바이에 이르기까지 큰 폭으로 하락했다. 폭락세로 개장한 유럽 증시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금리 인하 조치를 단행하자 잠시 반등했으나 다시 혼조세를 보이고 있다. 전 세계 정치지도자와 금융당국자들이 “금융시장 붕괴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잇달아 시장 안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은 쉽게 안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공포’와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는 세계 주식시장을 점검해본다.》
[한국 증시]
하루 만에 45조원 증발… ‘음력 9월 위기설’까지
코스피 1,300 선이 8일 무너지자 한국 증시는 ‘공포’에서 ‘체념’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이날 증시 폭락으로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하루 만에 45조 원가량의 돈이 공중으로 사라졌다. 동양종금증권 김성원 지점장은 “요즘 주식을 갖고 있는 개인투자자들은 주식 정리 시점을 놓쳤다고 생각해서인지 매도마저 포기한 상태”라고 전했다.
서울 증시는 이날 개장한 지 10분 만에 코스피가 50포인트 가까이 급락했지만 이후 하락 폭을 30포인트 정도까지 줄이면서 1,300 선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일본 증시가 폭락하는 등 세계 증시의 동반 폭락 소식이 전해지고 외국인투자가와 기관투자가가 동반 매도에 나서면서 1,300 선이 힘없이 붕괴됐다.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 객장에 나온 노년층 개인투자자들은 우려한 대로 주가가 주저앉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전광판만 응시했다.
주식과 펀드에 3000만 원을 넣었다는 개인투자자 장모(54·여) 씨는 “1,300 선 밑으로는 안 떨어질 거라는 증권사 전망이 많아 최근 하락장에서 돈을 넣었다”며 “상황이 안 좋으면 손절매라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 증시 폭락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선방했던 한국 증시가 폭락세를 보이자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한때 유포되던 ‘9월 위기설’의 ‘9월’이 음력이다”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다. 음력 9월은 양력으로 10월이어서 이제 위기가 밀어닥치고 있다는 농담.
굿모닝신한증권 정의석 투자분석부장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처음에는 분노하며 현실을 강하게 부인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과 타협하면서 결국에는 포기하게 되듯 요즘 한국 증시를 둘러싼 심리 상태도 현실 타협을 넘어 ‘포기’ 쪽으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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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증시]
英-佛-獨반짝 회복후 하락… 美는 오르락 내리락
미국과 유럽 각국의 전격적인 공동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8일 유럽증시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면서 하루 종일 혼조세를 보였다.
유럽연합(EU)이 전날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재무장관 회담에서 개인 예금에 대한 지급보증을 최저 2만 유로에서 5만 유로로 확대하고 영국 정부가 8개 대형은행을 부분 국영화하기로 하는 등 구제금융 조치를 발표했으나 이날 오전까지 불안심리를 잠재우지 못했다.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의 FTSE 100지수는 이날 1.64% 떨어진 4,529.64로 장을 시작한 뒤 장중 7%대까지 폭락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증권거래소의 DAX지수는 장중 8.57%, 프랑스 파리증권거래소의 CAC 40지수는 8.18%까지 떨어졌다.
유로화는 금융위기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유로당 달러 환율이 전날 뉴욕 시장의 1.3645달러보다 떨어진 1.3550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는 소식이 나온 뒤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오후 들어서면서 CAC 40과 FTSE 100지수는 한때 전날 대비 상승으로 돌아섰고, DAX도 전날 종가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금리 인하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오후 2시 28분(현지 시간) 현재 FTSE 100은 전날 대비 3.99% 하락했다. 또 오후 3시 28분 현재 DAX는 4.5%, CAC 40은 3.51% 각각 떨어졌다.
금리인하 조치에도 증시가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미 유통업체들의 9월 판매가 급감하면서 경기침체 우려를 더욱 고조시킨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미국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전날 종가보다 0.1% 떨어진 9,437.23으로 시작한 뒤 장중 2.47%까지 떨어졌지만 오전 9시 51분 현재 1.78% 상승세로 돌아서는 등 불안한 등락을 보였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일본 증시]
21년 만의 최대 낙폭… 도요타자동차도 11.59%↓
8일 일본 도쿄(東京) 증시에서는 닛케이평균주가가 사상 세 번째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주가수익률(PER)과 주가순자산배율(PBR) 등 각종 지표도 사상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도쿄 도심의 증권가 매장 앞에서는 엄청난 하락폭이 표시된 전광판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두는 행인의 모습도 보였다.
주식시장 전문가들은 외국 헤지펀드들이 위험자산을 축소하고 현금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하락세를 주도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기관투자가들도 펀드환매사태 등에 대비해 매도 공세에 가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하락세는 업종과 기업규모 등에 관계없이 사실상 전 부문에 걸쳐 나타났다. 도쿄증시 1부에 상장된 종목의 96%에 해당하는 1649종목의 주가가 떨어졌다. 오른 종목은 44개에 불과했다.
일본 최대 기업인 도요타자동차는 영업이익 등 경영실적 예상치를 대폭 하향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가가 11.59%나 폭락했다. 도요타자동차가 경영실적 예상치를 조정하기로 한 데는 일본 엔화가 예상 밖의 강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오후 2시 25분경 달러당 99엔대에 진입하는 초강세를 보였다. 100엔 선이 무너진 것은 약 6개월 만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이날 주가 폭락에 대해 “보통 일이 아니다”며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재무상 겸 금융상도 “일본의 금융시스템은 구미에 비해 건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도 “전국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쇼크가 실물부문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중의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중소기업 지원 등에 필요한 1조8081억 엔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중화권 증시]
中상하이지수 2100 무너져
홍콩 H지수도 8000선 붕괴
중화권 증시도 8일 일제히 하락하며 폭락 장세를 보였다.
홍콩 항셍지수는 8일 전 거래일인 6일보다 8.17%나 폭락한 15,431.73으로 마감했다. 2년 3개월여 만에 최저치였다. 항셍지수가 15,000대로 하락한 것은 2006년 6월 29일 이후 처음이다.
항셍지수는 16,107.98로 출발해 개장 초기에는 오름세를 보였지만 오후장 들어 급락했다.
홍콩 당국이 8일 금리를 1%포인트 내린 2.5%로 인하한다는 발표도 주가 폭락을 막지 못했다.
한국 투자펀드들이 주로 투자하는 홍콩 H지수도 이날 무려 964.16포인트(11.46%)가 떨어지면서 7,452.74까지 주저앉았다. H지수가 7,000대로 내려간 것은 2006년 11월 10일(7,914.50) 이후 처음이다.
중국의 상하이종합지수도 2,092.22로 3.04% 하락해 2,100 선마저 무너졌다.
중국 증권당국은 지난달 매수자 거래세를 폐지한 데 이어 최근 대주제 등 신용거래를 허용했다.
또 국유기업들에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게 하고 자사주를 매입하도록 하는 등의 부양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파고를 막지는 못했다.
대만 증시의 자취안지수도 전날보다 5.76% 떨어진 5,206.40에 마감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