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의 삼성…‘마누라와 자식 빼곤 다 바꾼’ 20년

  • 입력 2008년 4월 23일 03시 01분


퇴장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기자회견에서 대국민 사과 및 퇴진 성명을 발표한 뒤 비서진의 부축을 받으며 회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홍진환 기자
퇴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2일 기자회견에서 대국민 사과 및 퇴진 성명을 발표한 뒤 비서진의 부축을 받으며 회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홍진환 기자
“지난날 우리의 창업주와 선배들이 어떤 시련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오늘의 자랑스러운 삼성을 이룩하셨듯이 본인은 젊음의 패기와 진취의 기상을 바탕으로 제2의 창업에 나서겠습니다.”(1987년 12월 1일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

“삼성가족 여러분, 20년 전 저는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인정받는 날, 모든 영광과 결실은 여러분의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정말 미안합니다.”(2008년 4월 22일 기자회견)

1987년 부친인 이병철 창업주의 타계로 45세의 나이에 삼성그룹 총수가 된 이건희 회장이 결국 ‘삼성 비자금 의혹’ 특별검사의 파고(波高)를 넘지 못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비자금 사건을 둘러싼 논란과는 별도로 이 회장이 이끈 20여년 사이 삼성그룹은 한국의 ‘간판기업’으로 우뚝 섰다. 특히 주력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세계 반도체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최고 수준의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와 함께 ‘신(新)경영’ ‘샌드위치론’ ‘천재경영’ ‘창조경영’ 등 이 회장이 던진 화두(話頭)는 경제계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 전반에 변화와 혁신의 자극제가 됐다.

○ 20여년간 삼성그룹 ‘빅뱅’

이 회장은 취임 직후 자율경영과 기술 중시, 인간 존중을 축으로 하는 ‘제2창업’을 선언했다. 또 ‘21세기 초일류기업 달성’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조(兆) 단위 순이익 실현’을 약속했다.

이 약속은 대부분 지켜졌다. 반도체와 초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 휴대전화기, 모니터 등 세계 1위 제품을 줄줄이 탄생시켰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도 지난해 세계 최대 브랜드컨설팅회사인 인터브랜드의 평가에서 169억 달러로 세계 21위를 차지했다.

특히 2002년에는 시가총액에서, 2005년에는 브랜드 가치에서 난공불락처럼 여겨지던 일본의 소니를 앞지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 회장 취임 첫해인 1987년 17조 원이었던 그룹 연간 매출액은 2006년 152조 원으로 8.9배, 세전(稅前) 이익은 2700억 원 수준에서 14조2000억 원으로 52.6배 늘었다.

또 같은 기간 시가총액은 1조 원에서 140배인 140조 원으로, 수출은 9억 달러에서 73.7배인 663억 달러로, 해외를 포함한 임직원 수는 16만 명에서 1.6배인 25만 명으로 증가했다.

삼성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매출액은 국내총생산(GDP)의 18%, 시가총액은 상장기업 전체 시가총액의 20%, 수출은 한국 전체 수출의 21%를 차지했다.

○ 화두를 선점하는 재계 리더

이 같은 외형 성장의 배경에는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면서 신경영을 선언한 게 대표적이다. ‘국내 최고’라는 허명(虛名)에 안주하던 삼성 임직원에게 충격을 줘 관행을 깨지 않으면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경영론이라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강소국론’도 제기했다. 이 회장은 2001년 5월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네덜란드와 핀란드 등 유럽 국가는 규모는 작지만 세계적인 대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면서 강국의 위치를 확보했다”며 “이들처럼 대기업이 국가경제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경영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3년에는 ‘천재경영론’을 꺼냈다. 그는 “빌 게이츠 같은 인재가 3, 4명 있으면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도 2만 달러, 3만 달러로 늘어날 수 있다”며 “준비경영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시장이 어떻게 변하든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천재급 인재의 확보에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화두는 2005년 “한눈에 삼성 제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독창적인 ‘삼성 디자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디자인경영론’으로 이어졌다.

또 2006년에는 “과거에 해오던 대로 하거나 남의 것을 베껴서는 절대로 독자성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원점에서 보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창조성이 필요하다”며 이른바 ‘창조경영론’을 제시했다.

이 회장에게 영화(榮華)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삼성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일각에서 삼성의 성공을 두고 ‘황제경영의 산물’이라는 지적과 함께 ‘삼성공화국론(論)’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반(反)삼성’ 기류는 결국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와 특검으로 이어졌고 이 회장의 퇴진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됐다.

이 회장은 이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의 계획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경영 퇴진을 선언하면서 회장 직은 물론이고 삼성 내 모든 공식직책에서 물러난 만큼 당분간 공개적 행보는 극히 꺼릴 것이 확실시된다. 다만 이번 조치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의 대주주 지위는 여전한 만큼 앞으로 경영권 승계 문제를 포함한 그룹의 핵심 현안에 대해서는 주주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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