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떠난다? 최근 2년 51조원 팔아

  • 입력 2008년 4월 20일 19시 56분


최근 2년3개월간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 무려 518억2800만 달러(약 51조 8280억원)를 팔아치웠다. 반면 같은 기간 대만 증시에서는 211억8600만 달러, 인도 증시에서는 221억4600만 달러를 사들였다.

이제 외국인은 한국 증시를 외면하는 걸까. 취재기자는 이 물음에 답을 구하기 위해 8일부터 나흘간 홍콩을 방문, 외국인 투자자 10여 명을 만났다.

이들은 한국이 포함된 아시아 국가에 투자하는 펀드 운용 책임자, 이코노미스트, 헤지펀드 최고경영자(CEO) 등이다. 이들은 세계적 자산운용사들의 아시아 데스크들로 이들의 시각에 따라 해당 펀드에서 한국 편입 비중이 달라진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에 이상 징후가 있어 주식을 팔지는 않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미국과 유럽 투자자들의 환매요청이 들어오자 이미 상당한 투자수익을 거둔 한국에서 주식을 팔아 현금을 마련했다는 것.

하지만 한국증시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연말까지는 한국이 미국 실물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올해 말까지는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차익실현을 위한 매도 행진

"전 세계적인 유동성 위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파는 것이지 한국 증시에 구조적 문제(structure weakness)가 있어서 파는 건 아닙니다. 한국 증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여전히 '비중 확대'다."

8일 홍콩 센트럴 '차터 하우스' 사무실에서 만난 사이먼 루돌프 프랭클린템플턴인베스트먼트 아시아 법인 수석부사장 겸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한국 증시를 낙관적으로 봤다.

한국은 대만과 함께 아시아 신흥국 증시에서 시장 규모가 크고 거래량이 많아 현금자산을 확보할 수 있는 주요 시장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의 신용 위기와 관련해 미국과 유럽 대형 뮤추얼펀드 가입자들의 펀드 환매가 늘어나자 외국인들이 이미 충분히 차익 실현을 한 한국 주식을 판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0월~올해 2월 코스피 시장의 외국인 국적별 순매도 현황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국적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각각 13조7263억 원, 7조1041억 원을 팔아치워 국적별 1, 2위를 차지했다.

이건표 전 코메르츠은행 홍콩 대표는 "현재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미국과 유럽의 대형 뮤추얼 펀드"라며 "경기 침체로 헤당국 투자자들의 펀드 환매가 이어지자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시장에서 돈을 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 관심, 한국에서 대만으로 이동

올해 들어 중국과 대만간의 정치적 긴장이 완화되면서 외국인의 관심이 한국에서 대만으로 쏠리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해 1~3월 한국 증시에서 13조4300억원를 순매도했지만 대만에서는 같은 기간 1조5180억원를 순매입했다.

헤지펀드 트리비리지의 김유진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중국과 대만 사이의 관계가 더욱 좋아지면 대만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더 커질 수 있다"며 "앞으로 중국과 대만 사이의 관계가 한국 증시에서 큰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전인 2005년과 2006년에도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꾸준히 팔았다. 중국, 인도 같은 고성장 국가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이 옮겨졌기 때문이다.

사이먼 루돌프 수석부사장은 "인도와 중국은 한국보다 기업 성장 잠재력이 커 마치 자석처럼 투자자들을 끌어당겼다"고 말했다. 템플턴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으로 이머징 시장 펀드의 지역별 투입 비중은 브라질(19%) 중국(16%) 러시아(13%) 터키(8%) 한국(7%) 순이다.

●미국 영향 가장 많이 받지만 장기적으로는 낙관

홍콩 센트럴 지역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자산운용사와 헤지펀드는 지구 반대편 미국 소식에 실시간 귀를 기울이며 대책을 모색하느라 바쁜 분위기였다.

이들은 현재 한국 증시가 가격이 떨어져 매력적이라고 보면서도 올해 말까지는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계 대형 자산운용사의 한 펀드매니저는 "미국 위기가 해결되려면 한참 더 남았다"며 "미국의 실물경기가 본격적으로 나빠지면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들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자산운용사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10여 개 국가에 투자하는 펀드에서 한국 비중을 2년 전부터 점차 낮춰 왔다.

그러나 이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시장을 꾸준한 오름세를 이어나갈 '강세장'으로 보고 있었다.

한국 시장에 연간 4000억~1조 원을 투자하는 헤지펀드 PMA캐피탈매니지먼트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파르핫 말릭은 "내가 만난 선진국의 큰 손 가운데는 아시아 시장 중에서 한국 증시에만 투자하고 싶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며 "한국은 우리가 투자하는 아시아 전 국가 가운데 항상 투자액 기준 상위 5위 안에 든다"고 말했다.

신수정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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