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대란, 3~6개월 뒤에 진짜 위기 닥칠 것”

  • 입력 2008년 3월 11일 02시 54분


중소제조업체 원자재 값 대란…비상구는

인천 남동공단-반월시화공단 현장 르포

《10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공단 내 한국산업단지공단. 1시간여 공단 내 중소기업인들을 만나는 동안 지나가던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그쪽 원자재 값은 얼마나 올랐어?”라는 질문으로 안부 인사를 대신했다.

중소 제조업체들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원자재 가격은 매일 가파르게 오르고 있지만 납품 단가는 예전 수준에 묶여 ‘생산=손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대로 가면 지난해 맺은 원자재 수급 계약이 끝나고 새로 계약을 해야 하는 올여름부터 무너지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주물업체를 시작으로 최근 잇따르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납품 중단 움직임도 이 같은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아일보 산업부는 중소 제조업체들이 밀집한 인천 남동공단과 반월·시화공단을 찾아 위기에 봉착한 중소기업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 납품 단가는 그대로… 일부 부품 생산 중단

반월공단 내 휴대전화 부품 생산업체인 A사는 최근 도금 기판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도금용 금(金)이 지난해 가을 g당 1만6000원에서 2만500원으로 올랐지만 납품 단가는 개당 1700원으로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 회사 기술담당 이사 S 씨는 “도금용 금뿐 아니라 구리, 접착제 등 휴대전화 관련 원자재가 지난해 초보다 30∼50%씩 올랐다”며 “일부 부품은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인천 남동공단을 찾은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곳에서 동(銅) 주물 전문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불쑥 달력을 내밀었다.

1월 2일. ‘t당 동 6700달러(약 643만 원), 아연 2300달러(약 220만 원)’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3월 7일에는 ‘동 8800달러(약 845만 원), 아연 2800달러(약 269만 원)’가 적혀 있었다. 그는 3년 가까이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력에 원자재 가격을 표시한다고 했다.

김 사장은 “올해만 해도 2개월 사이 구리 가격이 30%가량 올랐는데 2년 사이 가격 상승률이 100% 정도”라며 “하지만 납품 가격은 그대로여서 제품을 생산할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원자재 값이 뛰면서 공단 내에서 사용되는 다른 자재 값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포장 전문업체인 H사는 “포장 박스의 주원료는 철이나 광물 등과 별 관계가 없는 종이이지만 종이 값도 지난해 초보다 30%가량 뛰었다”며 “이익을 줄여 자재 값 인상 충격을 흡수해 근근이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최영기 반월시화혁신클러스터추진단장은 “공단 내 기업들이 지금 쓰고 있는 원자재는 대부분 지난해 구매 계약을 한 것”이라며 “진짜 위기는 새로 원자재 구매 계약을 해야 하는 3∼6개월 후 본격적으로 찾아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 화물차 통행량 크게 줄어… 주변 상가도 찬바람

원료와 제품을 실어 나르는 대형 화물차량 수도 현격히 줄었다. 공단의 침체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남동공단 입구인 남인천영업소의 중대형 화물차량 통행량은 지난해 10월 27만5000대에서 올해 2월 19만1000대로 30% 넘게 감소했다. 반월·시화공단 입구인 서안산영업소도 같은 기간 18만3000대에서 14만여 대로 20% 넘게 줄었다.

도공 관계자는 “겨울에 전체 통행량이 줄어드는 편이지만 화물차의 경우 계절적인 요인이 크지 않다”며 “화물차 통행량이 급격히 준 것은 그만큼 공단의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들다 보니 은행에 손을 벌리는 기업도 늘고 있다. 공단 내 중소기업은행 지점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자금 압박으로 공단 내 중소기업들의 대출이 최근 부쩍 늘었다”고 귀띔했다.

공단 주변 상가도 침체의 그늘이 짙게 깔려 있었다. 남동공단에서 컨테이너 식당을 운영하는 B 씨는 “식재료 가격도 워낙 올라 이번 달부터 정식 값을 3000원에서 3500원으로 올렸다”며 “가뜩이나 손님이 줄었는데 값을 올리고 나서 손님 발길이 뚝 끊긴 것 같다”고 말했다.

안산·시흥=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인천=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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