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자동차가 한미FTA 좌초시킬 수도”

  • 입력 2007년 9월 1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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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찰스 랭걸올해 77세의 19선 하원의원. 지역구는 할렘이 포함돼 있는 뉴욕 제15선거구. 올 1월 흑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하원 세입위원회 상임위원장에 취임. 할렘에서 파출부를 하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 고교를 중퇴한 뒤 군에 입대. 6·25전쟁 때 흑인만으로 구성된 503 포병대대 병장으로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에 포위돼 다리를 다친 후 극적으로 생환. 무공훈장 등을 받고 전역한 뒤 고교에 복귀, 대학과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됐다.
● 찰스 랭걸
올해 77세의 19선 하원의원. 지역구는 할렘이 포함돼 있는 뉴욕 제15선거구. 올 1월 흑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하원 세입위원회 상임위원장에 취임. 할렘에서 파출부를 하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 고교를 중퇴한 뒤 군에 입대. 6·25전쟁 때 흑인만으로 구성된 503 포병대대 병장으로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에 포위돼 다리를 다친 후 극적으로 생환. 무공훈장 등을 받고 전역한 뒤 고교에 복귀, 대학과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됐다.
FTA 美비준 열쇠 쥔 찰스 랭걸 하원 세입위원장 인터뷰

"그날 이후로 내 인생에 나쁜 날은 없었다(I haven't had a bad day since)."

찰스 랭걸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은 이 말을 자주 한다. 올 4월 펴낸 자서전의 제목이기도 하다. 여기서 '그날'은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중공군에 포위돼 생사의 기로에 섰던 1950년 11월 30일을 뜻한다.

6·25전쟁 참전용사인 그는 미 의회에서 대표적인 친한파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랭걸 위원장은 13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도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시종일관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하지만 핵심 주제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만은 어조가 달랐다. 딱딱하고 사무적이었다.

4월 FTA 타결 이후 양국 언론과 무역 관계자들은 FTA 의회 비준의 열쇠를 쥐고 있는 랭걸 위원장의 입을 주목해 왔지만 그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날 작정하고 털어놓은 한미 FTA에 대한 견해는 상당히 강경하고 부정적이었다.

다만 "랭걸 위원장은 근본적으론 한미 FTA를 지지할 것"이란 세간의 기대처럼 부정적 견해의 행간엔 '조건절'들을 붙였다.

―한미 FTA를 지지하는가?

"FTA는 양국 국민, 즉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양국 행정부가 서명(6월 30일)한 협정에는 긍정적, 부정적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 미국의 금융, 보험 산업에는 커다란 플러스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상쇄하는 마이너스가 있다. 특히 쇠고기와 자동차 교역이 문제다. 미국의 쇠고기 산업 주(州) 관련자들은 FTA를 통해 공정한 교역 관계가 이뤄질 것으로 믿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 지역의 의원들은 한미 FTA를 지지하지 않는다. 자동차 교역도 그렇다. 한국은 자동차 교역에서 항상 보호무역적이었다. 미국에 대해서만 그런 게 아니다. 아마 상식적으로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물론 미국의 자동차 산업에도 문제가 있지만 미국에선 해마다 70만 대의 한국차가 팔리는데 한국에서 팔리는 미국차는 5000대에도 못 미치는 게 현실 아닌가. 관련된 의원들은 절대 한미 FTA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의회에는 한미 FTA가 통과될 만한 찬성표가 없다. 미 행정부도 의회에 한미 FTA를 통과시켜 달라는 요청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은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아직 작업 중이다."

―자동차 문제가 한미 FTA를 좌초시킬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가.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가 함께 딜 브레이커(deal breaker·거래를 깨뜨리는 요인)가 될 수 있다."

―한미 양국은 추가 재협상은 없다고 공언했다. 한국 정부가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가.

"(구체적으로 해야 할 조치는) 나도 모른다. 다만 미 의원들이 양국의 교역이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확신하도록 해야 한다. 더 많은 쇠고기와 자동차가 (한국에) 들어가고 미국차가 한국차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미국이 손해 보는 게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는 한국 국민에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도 모든 사람이 FTA를 지지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협상대표들끼리만 합의하면 되는 게 아니라 양쪽 국민도 동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미 양국은 당신이 주도해 만든 '새 무역정책(New Trade Policy)'에 따라 재협상을 벌여 6월 말 FTA 합의 내용을 부분 수정했다. 미 의회에 페루 파나마 콜롬비아 한국 등 4개 FTA가 걸려 있는데 한미 FTA는 언제 처리할 생각인가.

"페루 FTA는 이번 달이 끝나기 전에 비준될 것이라 확신한다. 파나마 FTA도 통과를 확신하지만 파나마 의회 의장 선출 문제(미군 살해 혐의 수배자가 의장으로 선출될 예정)로 논란이 일고 있어 지켜봐야 한다. 콜롬비아는 더 복잡하지만 미 의원들이 곧 방문할 예정이며 걸림돌들이 제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미 양국(정부)은 아직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을 통해 우리가 한미 FTA를 의회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신호가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협정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15일 "자동차와 관련해 미 의회가 미 행정부에 한국과 추가로 얘기해 보라고 강한 압력을 넣고 있지만 현재 양국 간엔 자동차와 관련해 추가 협상이 진행 중인 게 전혀 없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2월이면 미국의 대선 예비경선이 시작되므로 한미 FTA 비준이 차기 정부로 넘어갈 것이란 우려도 있다. 미 행정부가 비준동의안을 제출할 적기는 언제인가.

"분명히 말하지만 행정부는 충분한 표를 확보했다고 믿기 전에는 절대 비준동의안을 갖고 오지 않을 것이다. 대선이나 어떤 정치 일정과도 상관없다. 표결에서 실패할 게 분명하면 절대 의회로 가져오지 않는데 그들은 현재 표 분포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의회에 제출할 적기는 쇠고기와 자동차 관련 문제를 제거했을 때다. 지금 없는 찬성표를 얻게 될 때가 한미 FTA를 의회에 가져갈 적기다."

―6·25전쟁 참전이 인생에 미친 영향은 어느 정도인가.

"죽음에 그렇게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결국 살아나도 그 상황은 악몽이 되어 남는다. 중공군 수만, 수십만 명이 당신의 동료를 죽이고 당신에게 총을 쏘고 있다. 한순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끝없이 계속 밀려와 당신을 둘러싼다. 가장 끔찍한 악몽이었다. 신에게 빌었다. '살려만 주신다면 앞으로 어떤 것에도 불평하지 않겠다'고. 그게 스무 살 때의 일이다. 그때 그날보다 더 나쁜 순간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나는 매일매일 그때 내 옆에 있던 수많은 사람이 살지 못한, 나도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날들을 살고 있다."

당시 그는 타고 가던 탄약 수송차가 중공군의 포탄에 맞아 구덩이에 처박혔다. 그는 "죽은 체했는데 심장 뛰는 소리 때문에 들킬까 봐 겁에 질렸었다"고 한다.

―한국에선 미군의 참전을 비난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참전한 데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북한을 방문해 보길 권하고 싶다. 그곳이 어떤 상황인지, 더 많이 알게 되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1950년 7월 유엔군이 도착할 당시 북한은 남한 영토의 95%를 점령한 상태였다. 내가 속한 보병 2사단은 부산에 상륙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젊은 사람들이 미국에 대해 화를 내는 건 쉽겠지만 그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 유엔군이 곧바로 도우러 가지 않았다면 지금 더 나은 상황에 살고 있겠는가'라고."

―자서전을 한국에서 출판할 계획도 있는가.

"한국어로 번역된다면 기쁜 일이겠지만 일단은 미국 내 반응을 지켜보고 있다."

―최근의 한미관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한미관계는 좋다. 나는 한국이 북한과 화해를 추진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은 최근 남북 관계의 개방을 지지하는데 있어 마지못해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진정으로 한국은 통일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공산주의가 이기는 게 아니고 민주주의가 없어지는 게 아닌 방식이어야 한다. 미국은 통일을 우해 모든 것을 다 지원해야 한다."

―36년간 연방하원의원을 지냈고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원로 정치인으로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를 어떻게 평가하나.

"6·25 참전 후 최소한 스무 번은 한국에 갔다. 한국의 자유와 경제적 진전을 볼 때마다 기쁘고 자랑스럽다. 미국 내 코리언어메리칸들 역시 내가 진정으로 존경하고 감탄하는 존재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가면서도 미국을 문화적, 과학적, 경제적으로 더 훌륭하게 만들어가는 원더풀한 모자이크의 구성 요소다."

:찰스 랭걸은 누구?: 올해 77세의 19선 하원의원. 지역구는 할렘이 포함돼 있는 뉴욕 제15선거구. 올 1월 흑인으론 사상 처음으로 하원 세입위원회 상임위원장에 취임. 할렘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6살 때 집을 나간 뒤 파출부를 하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 고교를 중퇴한 뒤 군에 입대. 6·25전쟁 때 흑인만으로 구성된 503 포병대대 병장으로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중공군에 포위돼 다리를 다친 후 극적으로 생환. 무공훈장 등을 받고 전역한 뒤 고교에 복귀해 대학,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됐다.

워싱턴=이기홍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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