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원, 우린 사전에서 잘라 버렸습니다

  • 입력 2007년 2월 15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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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남자기는 1942년 전남 목포시에서, 한국도자기는 1943년 충북 청주시에서 출발했다. 두 기업은 60년 넘게 생활자기라는

한 우물만을 파 온 ‘장인(匠人) 기업’이다. 도자기 업체라는 공통점 외에도 본사가 지방에 있는 향토기업이라는 점,

그리고 숱한 고비를 노사 화합으로 넘겼다는 점 등 많은 부분이 닮은 맞수 기업이다. 》

○ 인력 감축 불가피하자 회사 따로 세워 재고용

행남자기와 한국도자기는 구조조정 한파가 불어 닥쳤던 1998년 외환위기 때는 물론 그 이후에도 단 한 차례의 인력 감축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행남자기는 2000년 본사가 있는 목포시 석현동 목포지방산업단지가 산업지역에서 주거지역으로 변경되면서 경기 여주군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유휴인력 100명에 대한 인원 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김용주(65) 회장은 이들을 고용하기 위해 목포에 조미 김 제조회사를 신설했다.

한국도자기의 평균 직원 연령은 45세. 제조업 종사자 평균 연령인 37.5세(2005년 말 기준)를 크게 웃돈다. 김무성 상무는 “요업(窯業)이 섬세한 기술을 요구하다 보니 숙련된 기술자는 회사를 지탱하는 최고 자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도자기 김동수(71) 회장은 2004년 경영권을 아들인 김영신 현 사장에게 넘겨줄 때도 ‘정리해고는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는 후문이다.

○ 부자 사원-자매 사원-친척 사원… “가족 같아요”

행남자기 노조는 창업주 김준형(90) 전 회장이 1963년 ‘노동자의 권익을 찾아준다’는 취지에서 사측에서 먼저 만들어 줬다. 행남자기 이병건 팀장은 “김 전 회장이 노동자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 귀찮아하는 직원들에게 노조의 필요성을 직접 설득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행남자기는 노조가 설립된 후 지난 40여 년간 단 한 번도 노사분규가 일어나지 않았다. 경영진과 노조 간의 신뢰가 두터웠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은 회사경영을 맡던 시절 노조 설립 이후 정기 대의원대회에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참석했고 아들인 김용주 현 회장은 노사협의회 때 경영 전반에 대한 사항과 재무제표 브리핑을 하고 있다.

한국도자기에는 아예 노조가 없다.

한국도자기 김무성 상무는 “충청도 사람 성격 때문인지, 가족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직원들이 노조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또 “한 지역에 오래 뿌리를 내리다 보니 부자(父子) 사원, 자매 사원 등 자연스레 가족, 친척이 같은 회사를 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은 덕분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무(無)노조인 한국도자기의 임금 협상 방식도 독특하다. 매년 직원 대표들이 임금 인상안을 회사 측에 백지 위임하고 회사는 직원들의 기대수준보다 높은 임금 인상으로 화답하고 있다.

○ 公-私 엄격하게 구분… 투명경영으로 신뢰 얻어

두 기업 모두 대(代)를 이어 경영하고 있지만 가업 경영에 대해 회사 안팎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사주(社主)의 투명 경영으로 직원들의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행남자기 김용주 회장은 업계 동향 파악을 위해 1년에 몇 차례씩 해외 출장을 나간다. 하지만 사적인 경비와 업무용을 철저히 구분하고 카드 전표에 꼼꼼히 설명을 붙인다. 행남자기 관계자는 “경리팀에서 회장님의 씀씀이 명세를 다 꿰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한국도자기 경영진은 외환위기 시절 갖고 있는 법인카드를 모두 회사에 반납하고 업무용 승용차 대신 개인용 승용차를 사용했다. 김무성 상무는 “회사 사정이 나아진 지금도 김동수 회장은 회사 근처 식당에서 가락국수나 칼국수로 점심을 대신할 만큼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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