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경영]The war for talent(인재 확보 전쟁)

  • 입력 2006년 11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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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글로벌 인재를 찾는다는 것은 마치 정글 속에 꼭꼭 숨은 타잔을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이다. 삼성 LG 등 주요 기업들은 해외로 나가 직접 인재를 발굴하고 있다. LG전자의 미주지역 채용 현장. 사진 제공 LG전자
세계 곳곳에서 글로벌 인재를 찾는다는 것은 마치 정글 속에 꼭꼭 숨은 타잔을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작업이다. 삼성 LG 등 주요 기업들은 해외로 나가 직접 인재를 발굴하고 있다. LG전자의 미주지역 채용 현장. 사진 제공 LG전자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이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대 특별강연에 모여든 1000여 명의 기술 인재들에게 삼성반도체의 성공신화와 미래의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삼성전자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이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대 특별강연에 모여든 1000여 명의 기술 인재들에게 삼성반도체의 성공신화와 미래의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삼성전자
올 7월 처음 시행된 SK의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외국 대학생들. 이들은 6주 동안 SK의 12개계열사에 배치돼 현장실무와 SK의 기업문화를 배웠다. 사진 제공 SK
올 7월 처음 시행된 SK의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가한 외국 대학생들. 이들은 6주 동안 SK의 12개계열사에 배치돼 현장실무와 SK의 기업문화를 배웠다. 사진 제공 SK
21세기 기업 최대의 화두는 인재

인종-국경 불문 재원확보 경쟁 치열

“현대 사회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앞으로 어떤 산업이 유망할지 알기 힘들다.”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 박사가 2003년 7월 한국을 방문해 남긴 말이다.

그는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인재’에 투자하는 게 가장 현명하다는 해법을 내놓았다.

나이스빗 박사의 말대로 우리는 자고 나면 또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냉전체제의 붕괴와 인터넷의 출현으로 세계가 하나로 묶이면서 생긴 현상이다.

‘삼성 신화의 원동력,특급 인재경영’의 저자인 김영안(55) 단국대 겸임교수는 “특히 정보기술(IT)과 디지털이 대중화되면서 정보화와 지식화의 급물살을 탄 것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맥킨지의 라자 굽타 전 회장은 21세기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the war for talent)의 시대’로 규정했다.

인재 확보전은 1,2차 세계대전처럼 유혈이 낭자하지 않다.

최첨단 무기가 동원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 인재를 확보하면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경쟁자를 제압한다.

경쟁업체들은 나중에야 ‘아차 당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늦었다.

글로벌 기업들은 5년,10년 뒤를 책임질 핵심인재를 뽑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인종이나 국경,나이,전공은 따지지 않는다. 인재를 발굴하고 확보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투자하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업의 생존은 사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인재경영 특집기사목록

▶ LG전자 이동진 부장이 말하는 글로벌 인재

▶ 잭 웰치의 4E1P 인재론

▶ 서류만 화려한 ‘헛똑똑이’는 가라

▶ “남들과 비슷하면 안 뽑혀요”
삼성전자 백은경 씨

▶ 인재발굴 위해선 ‘뭐든지’
…MS의 힘! 세상을 바꾼다

○ 글로벌 인재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기업의 미래는 전략이 아니라 인재에 달려 있다는 말도 나온다. 기업들이 찾는 글로벌 인재는 어떤 사람일까.

글로벌 인재란 단순히 외국어를 잘하거나 외국 문화에 익숙한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서 불확실성의 벽을 넘어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이뤄내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말한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응 능력,글로벌 차원의 네트워크 운용 능력,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지적 능력,전문 분야의 경쟁력도 글로벌 인재가 지녀야 할 자질이다.

즉,글로벌 인재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윤리성,전문성,창의력,기업가 정신을 갖춘 인물이다.

똑똑한 두뇌만 있다면

지구 끝까지 찾아간다

2001년 9월 10일 당시 삼성전자 인사팀장이던 이현봉 생활가전총괄 사장은 미국 A사의 우수 인재로 소문난 S 씨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일이 꼬였다. 하필이면 9·11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만나기로 약속한 12일 미국 국내선 항공편이 모두 결항돼 미팅이 취소될 지경이 됐다. 이 사장은 약속을 하루 연기한 뒤 산호세에서 포틀랜드까지 13시간을 자동차로 달려갔다. S 씨는 자신과 1시간 만나기 위해 왕복 26시간을 투자한 이 사장의 정성에 감동했다. 원래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마음을 바꿔 결국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성장동력 될 인재라면

사장보다 더 나은 대우

LG전자의 인사 분야 최고책임자인 김영기 부사장은 지난해 미국 출장 중 긴급 보고를 받았다. 핵심 인재로 확보해 놓은 K 씨에게 ‘이상 기운’이 감지됐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통화가 잘 되던 K 씨였는데 갑자기 연락두절 상태가 됐다는 것.

김 부사장은 출장 일정을 미루고 현지법인 주재원과 함께 K 씨 집을 찾았다. 그의 호소와 설득으로 K 씨는 LG맨이 됐다.

인재 확보를 위한 기업들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눈물겨울 정도다. 스카우트 대상 인물의 부인이나 부모를 만나 설득하기도 한다. 경쟁업체의 공세로부터 핵심 인재를 지키기 위해 ‘007 작전’ 식의 인물 빼돌리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기업들이 인재 확보에 매달리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어서다. 축구 천재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우승국으로 이끈 것처럼 특출한 인재 한 명은 기업을 위기에서 구하고, 나아가 생존과 미래를 보장한다.

특히 글로벌 인재가 타깃이다. 생산과 영업이 전 세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매출 중 해외 비중은 85%에 이른다. LG전자도 이미 10년 전부터 매출의 80%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생산의 3분의 1, 판매의 3분의 2가 해외에서 이뤄진다. 그만큼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글로벌 인재가 중요해졌다.

○ ‘인재 선진국’을 훑어라

2000년 삼성전자 임직원 4명이 대전의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를 방문했다. 연구소 소속 연구원 60여 명을 모두 만나 선진국에서 공부하고 있거나 일류 다국적기업에 몸담고 있는 동창과 친구들의 연락처를 받았다. 전자통신 분야 인명록을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후 3개월 동안 목록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해 면담 약속을 잡았다.

그런 다음 해외 석박사 채용 임원 1명, 연락 담당 직원 1명, 기술전문가 2명 등 4인 1조로 전담팀을 꾸려 미국 동부와 중부, 서부 등 세 곳으로 떠났다. 이렇게 만난 사람 중 무려 350여 명이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됐다.

선진국 석박사 채용 프로젝트를 전담하는 4∼6개의 해외인력팀은 1년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낸다. 이들은 지역마다 아예 국제채용담당자(IRO)까지 두고 인재 사냥에 나서고 있다.

LG전자는 올 2월 연구개발(R&D) 및 인사담당 책임자급 임직원 10여 명으로 구성된 ‘해외 우수인재 유치단’을 북미에 파견했다. 유치단은 스탠퍼드대 등 20여 곳의 미국 명문대를 일일이 방문했다. 유럽과 일본에서도 올해 안에 각각 2회 이상 순회 채용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SK그룹은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을 가진 고급 인재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매년 30∼40명의 MBA급 인력을 수시 채용하고 있다. 2002년 30여 명의 해외 MBA를 뽑은 것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글로벌 인재 채용 규모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40여 명을 채용할 때는 90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지원자 대부분이 세계 상위 20위권에 드는 MBA 출신이었다.

현대·기아차도 올 상반기에 미국(MIT, 조지아텍공대 등), 독일(베를린, 뮌헨공대 등), 일본(도쿄대 등) 등 선진국 명문대 출신의 글로벌 인재를 다수 확보했다.

LG전자 해외법인의 현지 채용인 현황
지역법인 수(개)현지 채용(명)
유럽213300
북미104900
아시아태평양 76000
서남아시아 23500
일본190
중국172만
중남미 65100
중동91100
구소련71100
합계804만5090
현지 채용인은 해외법인이 직접 채용한 외국인. 현지 채용인 중 관리자 이상 핵심 인재는 3700여 명으로 추산. 자료: LG전자

○ ‘인재 신대륙’에서 발견하라

SK의 인재관은 국경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사업에 국경이 있을 수 없듯이 인재 채용에도 나라를 따지지 않는다. ‘사람이 곧 기업’이라는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것이다.

SK는 인재 영토의 확장을 목표로 ‘글로벌 오픈 채용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중국에 ‘제2의 SK’를 건설한다는 기업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 인재를 적극 채용하고 있다.

지난해 뽑은 중국 신입사원은 20명. 2002년 중국 현지에서 공채 형식으로 경력사원을 채용한 적은 있지만 한꺼번에 20명의 신입사원을 뽑은 것은 처음이다. 올 하반기에는 지난해보다 2배 늘어난 40여 명을 선발하기로 했다.

LG전자는 기초과학 기술이 강한 러시아, 소프트웨어 인력이 뛰어난 인도, 잠재력이 무한한 베트남의 인재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인 현지 박사에게는 미리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한다. 베트남 하노이대 인재들은 한국에서 고려대 석사과정을 마치고 본사에서 2∼3년 정도 경력을 쌓은 뒤 현지로 돌아간다.

포스코는 인도 중국 베트남 멕시코 등에 투자를 추진하는 것을 계기로 선진국 중심의 채용 관행에서 벗어나 올해부터는 호주 중국 중남미 등으로 채용 지역을 다변화했다.

○ 팔 걷어붙인 최고경영자(CEO)

“나는 ‘C人O’다.”

제일모직의 제진훈 사장은 핵심인재 확보가 CEO의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한다. 임원들에게도 “기존 관행을 과감히 버리고 혁신적인 사고로 인재 찾기에 나서라”고 주문하고 있다.

제 사장은 직접 인재를 구하기 위해 올 3월에 5일간 미국 출장을 다녀왔다. 보스턴과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며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스탠퍼드대 등에서 채용설명회를 주관하고 박사급 인재들과 면담했다. 5일 동안 제 사장이 들른 학교만 6곳에 이른다.

제 사장은 2004년 취임 후 매년 해외에서 1000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재 발굴을 위해서다. 북미 대륙뿐 아니라 유럽 일본 러시아 등 인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인재 욕심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달 9일 그룹 창립 54주년 기념사에서 최우선 과제로 인재양성을 꼽았다. 김 회장은 “성장 동력이 될 인재라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데려오고, 능력이 있다면 사장보다 더 나은 대우를 해줘도 좋다”고 했다.

김 회장의 인재경영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한화는 해외 캠퍼스 리크루팅을 계획하는 등 글로벌 인재 확보를 위해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보수적인 금융업계에 ‘인재 확보전’을 촉발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지금은 은행의 경쟁력이 최고 전문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대”라며 “여러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특정 부문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 많아야 은행의 미래가 밝다”고 강조한다.

인재확보 역량을 사장단 업적 평가에 반영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삼성 전략기획실은 2002년부터 핵심인재 확보율을 고과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100점 만점에 30점.

LG전자도 매년 확보해야 할 글로벌 인재 확보 인원을 12명의 임원에게 할당한 뒤 점수에 반영하고 있다. 직급에 따라 100점 만점에 5∼20점이다.

○ ‘떡잎’부터 차지하기

“SK를 아는 미국인은 많지 않을 거예요. 일반 소비재를 별로 생산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석유화학 회사에 관심이 많아 SK 인턴십에 지원했습니다.”

7월 ㈜SK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미국 미시간주립대 경제학과 재학생 야다브 고팔란(22) 씨의 얘기다.

올 여름 SK 주요 계열사엔 고팔란 씨와 같은 외국인 대학생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올해 처음으로 시작된 ‘SK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에 선발된 인턴들이다.

이들은 8월 11일까지 총 6주 동안 SK의 12개 계열사에 배치돼 현장 실무와 SK의 기업문화 등을 배웠다.

국내 기업이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대규모 인턴십 프로그램을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 750여 명의 지원자가 온라인을 통해 몰렸으며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21개국 165명이 선발됐다.

LG전자는 국내 산학 프로그램 ‘LG 트랙’의 해외판인 ‘글로벌 LG 트랙’을 중국 브라질 인도네시아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기아자동차는 2003년 2월부터 연구개발 인재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 ‘연구 장학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년에 걸쳐 매월 학사 65만원, 석사 80만원, 박사 15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현장 실무교육을 시켜준다. 여기에 매년 40억원을 쓴다.

글=이호갑 기자 gdt@donga.com·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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