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32% 은행 ‘문전박대’… 고금리 ‘한숨’

  • 입력 2006년 9월 1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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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에 사는 한모(42) 씨는 지난해 6월부터 사업자등록을 하고 트럭 운전을 하고 있다. 월수입이 들쭉날쭉한 그는 올해 초 생활비로 쓰기 위해 은행 대출을 신청했지만 문전박대 당했다. 트럭을 살 때 받은 대출이 많은 데다 신용등급도 낮았기 때문이다. 한 씨는 어쩔 수 없이 상호저축은행에서 연 30%가 넘는 이자를 감수하고 500만 원을 빌렸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다른 저축은행에 추가 대출을 신청했지만, 그의 신용도는 이미 제2금융권에서도 받아주기 힘든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다. 이번엔 사(私)금융 업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대출을 신청했다. 업체 측은 200만 원을 빌려 주면서 수수료 명목으로 36만 원을 떼었다. 이자는 매달 15만 원으로 연 90%의 살인적인 금리였다.》

한 씨처럼 수입이 불규칙적인 자영업자들은 일반 가계에 비해 이런저런 금융회사에서 돈을 많이 빌리는 편이지만 신용등급은 상대적으로 낮아 대출조건이 매우 불리하다.

자영업자들은 ‘경기 부진→영업 위축→대출횟수 증가→신용도 하락→대출조건 악화→상환 부담 증가’의 악순환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 전체 대출 51조…신규 대출은 안 돼

본보와 한국신용정보가 분석한 자영업자 대출 및 신용도 현황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자영업자 170만2322명은 주택담보, 카드, 신용 대출 등으로 모두 50조9400억 원을 금융회사에서 빌렸다.

자영업자를 포함해 카드 등 신용거래를 한 적이 있는 3403만176명의 총대출금액은 625조700억 원이었다.

1인당 평균 대출금액은 자영업자 7648만 원, 신용거래 경험이 있는 국민 4407만 원으로 자영업자의 대출 규모가 3241만 원 더 많았다.

자영업자 대출이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1% 선으로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주택담보대출 카드대출 등 다양한 대출 상품을 통해 많은 돈을 빌린 것으로 이번 분석 결과 나타났다.

다만 올해 들어선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이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었다.

경기 위축으로 자영업자들이 영업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금융회사들이 영세 자영업자 대출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영업자들에 나간 올해 6월 신규 대출은 지난해 9월의 4분의 3 수준에 그쳤다. 반면 올해 6월 한 달 동안 전 국민에 대한 금융권 신규 대출은 지난해 9월보다 6조 원 이상 늘었다.

○ 코너로 몰리는 자영업자

이번 분석에서 전체 국민의 신용도는 좋아지고 있는 반면 자영업자의 신용도는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나빠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신용정보에 따르면 2004년 6월(1000)을 기준으로 하는 전 국민의 신용지수는 올해 4월부터 상승세를 타면서 6월 현재 1010을 나타냈다.

이에 반해 자영업자 신용지수는 줄곧 기준지수(1000)를 유지하다가 올해 2월 997까지 떨어졌다. 6월 들어서도 자영업자 신용지수는 999로 1000을 밑돌았다.

또 자영업자 가운데 신용지수 하위등급인 7∼10등급에 속하는 사람의 비율은 32.7%였다.

전체 국민 가운데 신용 하위등급에 속하는 사람 비중은 21.2%로 자영업자에 비해 크게 낮았다.

이처럼 신용도가 떨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의 제2금융권 의존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올해 6월 말 현재 대출이 있는 자영업자 가운데 절반을 웃도는 50.7%가 카드 보험 캐피털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쓰고 있었다.

이번 통계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최하위 10등급으로 전락한 자영업자 중 상당수가 고리의 사채(私債)를 끌어다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은행은 ‘요지부동’

정부가 영세 자영업자 대출을 강화하라고 독려하고 있지만, 은행들은 요지부동이다.

지난해 3월 23일 정부가 생계형 신용불량자에 대한 지원방안을 내놓은 이후 시중은행들도 영세 자영업자들의 회생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몇 가지 대출 방안을 제시했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신한은행에 통합된 조흥은행이 마이크로 크레디트(소액 대출) 전문기관인 사회연대은행과 업무 제휴를 하고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컨설팅과 6억 원가량(총 40명 대상)을 지원한 게 그나마 눈에 띄는 실적이다.

우리은행 등 일부 시중은행이 자영업자의 사업 관련 노하우와 기술력을 평가해 대출해 주고는 있지만 영세 자영업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신용불량 상태가 아닌 일반 영세 자영업자들도 은행에서 돈 빌리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실제로 은행들은 대출협약을 한 프랜차이즈로 대출 자격을 제한하는 등 영세 자영업자 대출을 까다롭게 관리하고 있다. 특히 인기가 식은 업종은 ‘특별관리업종’으로 지정해 사실상 대출이 금지되고 있다.

은행들이 최근 ‘소호(SOHO) 대출’이라는 이름으로 자영업자 대출을 다시 늘리는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일부 프랜차이즈 업종에 집중되는 등 자영업자들에게 은행 문턱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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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규모 대출 늘려야

금융전문가들은 은행이 사업성을 토대로 대출해 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자영업자들에게도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신용정보 강용구 CB관리실장은 “자영업자는 한번 대출받을 때 일반인보다 많은 돈을 빌리는데 이자율이 높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일반 기업이나 가계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은행 대출 담당자가 사업 현장을 방문해 자영업자의 수익성을 직접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은행들도 대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만큼 앞으로는 신용불량에서 벗어난 자영업자들도 여신 심사 대상에 포함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영세업자 대출받기 노하우

영세 자영업자들이 은행에서 사업자금을 빌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은행들은 부도 가능성을 우려해 대출심사를 상대적으로 까다롭게 한다.

하지만 평소에 신용 관리를 잘해 두면 예상보다 좋은 조건으로 대출받을 수 있다고 시중은행 대출 담당자들은 말한다.

우선 세금이나 공과금, 신용카드 대금 등을 제때 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은행에서 대출심사를 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이 연체 여부다. 연체한 전력이 있으면 대출심사 때 점수가 깎인다. 납부기한을 깜박 잊고 하루나 이틀 늦게 내더라도 모두 연체 실적으로 잡히는 만큼 고지서가 날아오면 바로 내는 것이 좋다.

은행 한 곳을 정해 집중적으로 거래하는 것도 영세 자영업자들이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받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평소 거래 실적이 좋아 ‘우수 고객’이 되면 나중에 대출심사를 받을 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여러 은행에 통장을 갖고 있다면 하나로 모아 거래 실적을 꾸준히 쌓아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절한 범위 안에서 담보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신용 대출만 고집하다 보면 대출 이자가 높아지거나 대출을 아예 못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보를 어느 정도 제공하면서 이자를 낮추는 방식으로 은행 돈을 쓸 필요도 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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