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파업… 車판매왕들도 “두손 들었어요”

  • 입력 2006년 8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국내 자동차회사의 올 상반기 판매 고수들이 16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 앞에 모였다. 왼쪽부터 최병식 쌍용자동차 부장, 정송주 기아자동차 과장, 최영순 GM대우자동차 소장, 전태석 현대자동차 차장. 김미옥 기자
국내 자동차회사의 올 상반기 판매 고수들이 16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 앞에 모였다. 왼쪽부터 최병식 쌍용자동차 부장, 정송주 기아자동차 과장, 최영순 GM대우자동차 소장, 전태석 현대자동차 차장. 김미옥 기자
《“한 달에 차 한 대 팔기가 죽기보다 힘들다.” 내수 불황이 계속되면서 자동차 영업사원들은 그야말로 ‘시련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기아 GM대우 쌍용자동차 등 국내 3개 자동차회사의 올 상반기 ‘판매왕’들도 마찬가지였다. 1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회의실에 모인 판매왕들은 “경기침체가 너무 심각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모인 자동차업계의 판매왕은 △기아차 정송주(36·경력 8년·상반기 137대 판매) 망우지점 과장 △GM대우 최영순(49·여·14년·60대) 일산호수영업소장 △쌍용차 최병식(37·9년·66대) 부평영업소 부장 등 3명. 또 현대차는 판매 2등인 전태석(48·23년·126대) 수원동부지점 차장이 참석했다. 이들이 전달하는 생생한 현장 경기를 들어봤다.》

○ 영업 차량 못 바꾸는 자영업자, 발만 동동

정송주 기아차 과장은 경기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고객들의 처지가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도배일을 하는 40대 남성이 계세요. 일거리가 없어 7년 된 1t 화물차가 고장 났지만 못 바꾸고 있죠. 신용불량자라 할부구입도 안 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요.”

최병식 쌍용차 부장도 비슷한 사례를 얘기했다.

“신용불량자인 고객이 ‘차가 있어야 일도 하고 애들 공부도 시킬 수 있으니 신용대출로라도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할 때가 가장 가슴이 아파요.”

전태석 현대차 차장은 “전자 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한 고객은 10년 탄 대형 세단과 업무용 승합차가 자주 고장 나 지난해부터 바꾸려고 벼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경영상태가 자꾸 나빠지자 세단은 바꿀 엄두도 못 내고 얼마 전 업무용 차량만 바꿨어요”라고 말했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2003년 122만5000대에 이르던 국산자동차의 내수 판매는 지난해 91만 대로 줄었다.

○ 파업과 수입차 도전…험난한 판매 현장

파업 시즌이 되면 영업사원들은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간다.

“올해는 휴가 전 아반떼와 싼타페가 한창 잘 팔릴 때 한 달이나 파업이 계속돼 다른 업체로 옮겨간 고객이 많았어요. 아반떼를 주문한 30대 고객은 휴가 때 새 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갈 계획에 신나 했었죠. 그런데 파업으로 출고가 계속 늦어지자 경쟁업체 차량으로 바꿔버렸어요. 떠나는 고객을 그대로 바라만 봐야 하는 심정이란….”(현대차 전 차장)

쌍용차 최 부장은 “쌍용차도 지금 파업이 계속돼 당분간 ‘개점휴업’에 들어가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시로 변하는 정부 정책도 큰 걸림돌로 꼽았다.

“7∼9인승 승합차가 한창 잘 팔리니까 세금을 올리더니 액화석유가스(LPG) 차량과 디젤 차량이 늘어나니 가스비와 경유값을 올려요. 정부에서 이러면 어떻게 연비나 세금 등 경제성을 따져 차를 고르겠어요.”(기아차 정 과장)

○ 영업은 땀과 비례한다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도 판매왕에 오른 비법은 의외로 싱거웠다. 이들은 ‘고객을 직접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전 차장이 ‘비밀병기’라며 조심스레 꺼내 보여준 허름한 다이어리에는 고객 수백 명의 인적사항과 특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영업은 발걸음 수에 비례해요. 차를 판다는 생각보다는 고객이 ‘나’를 믿을 수 있도록 자신을 먼저 팔아야 하죠.”

GM대우 최 소장은 “영업 시작 이후 굽 높은 구두를 신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기아차 정 과장의 명함에는 본명 대신 ‘정주영’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1999년 생산직에서 영업직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불도저 정신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이렇게 표현했다.

‘영업을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느냐’는 질문에 이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쳤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부들부들 떨리는 긴장감이 얼마나 짜릿한데요. 한번 ‘영업의 맛’을 보면 슬럼프도 이겨낼 수 있어요. 일한 만큼 결과가 오는 ‘정직한 직업’이거든요.”(GM대우 최영순 소장)

“정부에 바라는 건 딴 게 아니에요. 서민들이 땀 흘린 만큼 과실을 맺을 수 있는 ‘정상적인 시장’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쌍용차 최 부장)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