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돈이 말랐다고요?

  • 입력 2006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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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금고가 바닥나 고민이다.” 믿기지 않지만 요즘 은행업계에선 이런 말이 떠돌고 있다. ‘은행에 돈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 ‘대출에 사용할 자금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이다. 개인,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 은행이 대출해 줄 곳은 많지만 대출 재원인 ‘실탄’ 확보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7일 금융감독원과 은행업계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원화 예금 잔액은 493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489조 원)보다 4조 원 늘어나는 데 그친 반면 같은 기간 대출 잔액은 52조 원이나 증가했다. 대출은 예금에서 나가는 게 원칙이지만 최근 은행들은 금융채를 발행해 가까스로 신규 대출 수요를 충당하는 형편이다.》

은행이 대출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은 사회 분위기와 금리 상황에 따라 달라졌다.

외환위기 직후엔 너도나도 안전한 예금에 가입했다.

은행은 몰려드는 예금을 대출로 연결하기만 하면 됐다. 1999년 10월 기준 은행 대출금리는 예금금리보다 4.5%포인트가량 높았다. 이런 예대금리 차는 은행의 이익이 됐다. 2000년대 들어 예금 적금상품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금융상품이 인기를 끌면서 예금이 기대만큼 들어오지 않자 은행들은 금융채를 발행했다.

당시엔 발행 금리가 낮아 이자 부담이 크지 않았지만 올해 들어 사정이 바뀌었다.

금리가 오르면서 금융채 발행 때 내야 할 이자가 많아진 것. 게다가 금융채 발행 규모가 사상 최대 수준인 167조 원에 이르면서 원금 상환 부담도 커졌다.

금융채 신규 발행이 힘들어지자 은행들은 예금금리를 높여 대출 재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올 6월 예금금리는 4.36%로 금융채 금리(5.06%)보다 0.7%포인트 낮다. 은행으로선 금리를 조금 높여 예금을 늘리는게 금융채를 발행하는 것보다 유리한 셈.

실제로 하나은행은 최근 정기예금금리를 0.3∼0.5%포인트 높였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예금금리 인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나은행 윤영철 여의도지점장은 “안전자산만 찾는 고객이 적어져 금리를 올려도 신규 가입자가 크게 증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대출 왜 늘리나

정부가 담보대출을 규제하는데, 은행이 대출을 늘리려는 이유는 뭘까.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최근 본보 기자와 만나 “은행은 주택담보대출, 개인신용대출, 대기업여신, 중소기업 여신 등 4마리 말이 끄는 마차”라며 “어느 하나도 부진하면 안 되기 때문에 올 하반기에는 개인신용 부문을 확대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해외 인수합병(M&A)시장 진출, 은행연계보험(방카쉬랑스) 확대 등 은행의 사업 영역을 다각화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은행의 가장 안정적인 주 수입원은 대출이라는 얘기다.

대출고객 정보를 활용해 영업 기반을 넓힐 수 있다는 점도 은행들이 대출에 매달리는 이유다.

○ 은행 수익성 급감…소비자도 부담

지금처럼 은행이 수신금리를 높이면서 예금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출 재원을 마련하면 은행의 수익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금 고객에게 지급하는 이자 상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 상위 4개 은행의 올 2분기(4∼6월) 순이자 마진은 전 분기보다 0.05∼0.13%포인트 하락했다.

은행들이 이를 만회하기 위해 펀드나 은행연계보험 등 각종 금융상품 판매 수수료를 높이면 소비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금융연구원 구본성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거액 대출수요에 대해선 금융채를 발행하고, 개인 대출수요는 예금으로 충당하는 식으로 분리해 대응하면 불필요하게 채권을 발행하거나 금리를 올리는 일이 줄어 수익성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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