具-許 ‘58년 아름다운 동행’ 비결은?

  • 입력 2005년 11월 2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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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

LG그룹과 GS그룹의 대주주인 구씨와 허씨 경영자들은 그룹을 창업한 고(故) 구인회 회장(1907∼1969)의 이 가르침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1947년 사돈 집안(고 허만정 씨·구인회 창업주의 부인 허을수 씨의 6촌)과 동업해 LG의 모태인 락희화학(현 LG화학)을 세운 구 창업주는 기업경영에서 무엇보다도 ‘인화(人和)’를 중시했다.

인화 중시와 장자 승계 원칙이라는 기업문화는 LG는 물론 이 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GS와 LS그룹에서도 오너 형제들 간에 경영권이나 재산을 둘러싼 다툼이 없게 한 요인이다.

○철저한 장자 승계 원칙

1995년 2월. 당시 구자경 LG그룹 회장(현 명예회장)은 장남인 당시 구본무 부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줬다.

구본무 회장 취임과 함께 창업 세대는 모두 후선으로 물러났다. 구자경 회장은 물론 창업 세대인 허준구 LG전선 회장(작고), 구평회 LG상사 회장(현 E1 명예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현 GS리테일 명예회장), 구두회 호유에너지 회장(현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이 모두 고문으로 물러났다.

구자경 회장이 “젊은 사람들이 경영을 하는데 원로들이 부담을 주면 안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 1969년 12월 31일 구인회 창업주가 타계했을 때도 비슷했다.

그의 첫째 동생인 고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은 이듬해 1월 6일 그룹 시무식을 통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당시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구자경 부회장을 제2대 회장으로 추대하자. 어떤 혼선이나 잡음도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LG는 사흘 뒤인 1월 9일 합동 이사회를 열고 당시 구자경 금성사 부사장을 만장일치로 회장으로 추대했다.

LG그룹 한 임원은 “구씨와 허씨 양가 자손들이 엄격한 유교적 가풍 아래에서 교육을 받아 위계질서가 확실히 서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면서 “어른들이 결정을 내리면 자식들은 반드시 따른다”고 말했다.

○오너들 사이에도 예우 갖춰

구본무 회장은 그룹 부회장 시절 벤츠 S500을 탔다. 그는 항상 부친인 구자경 명예회장의 차량(벤츠 S600)보다 한 등급 낮은 차를 골랐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LG에서 분리되기 전 구본무 회장과 함께 다닐 때 절대 앞장서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공장을 함께 방문하거나 연구개발 성과보고회, 글로벌 CEO 전략회의에서도 항상 구 회장의 뒷자리를 자청했다.

허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로부터 회장단 가입을 권유받고서 손사래를 치고 있다. “구 회장이 회장단으로 있는데 내가 들어가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한다는 게 전경련 관계자의 귀띔이다.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LG필립스LCD 부회장도 형을 의식해 ‘자기 PR’를 자제한다. 9월 구본무 회장이 30여 명의 CEO를 이끌고 경기 파주 LG필립스LCD 공장을 방문했을 때도 구본준 부회장은 구 회장 뒤를 따르면서 질문에 대답하는 역할만 맡았다.

GS와 LS가 LG에서 떨어져 나올 때 다른 기업이라면 흔히 있을 법한 잡음이 전혀 없었다. 분리 후의 관계도 돈독해 홍보 담당 임원회의를 같이 할 정도다.

○해외 파트너와도 인화 중시

인화를 중시하는 ‘LG 문화’는 해외 합작 파트너와의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왔다. GS칼텍스의 합작회사인 미국 셰브론텍사코, LG필립스LCD의 합작사인 네덜란드의 필립스, LG전자 통신장비사업의 해외 파트너인 캐나다 노텔 등과도 마찰이 없다.

그러나 ‘LG에 한번 입사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회사로 옮기지 않는’ 인화경영의 폐단을 지적하는 얘기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LG의 한 임원은 “LG의 인화경영은 무조건 감싸 주는 가족주의나 온정주의와는 다르다”면서 “엄정한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한 합리주의 경영에 오너 경영인들의 인화가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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