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신약 ‘레바넥스’ 개발 스토리

  • 입력 2005년 9월 2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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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넥스’ 개발에 참여했던 유한양행 연구진과 간부들. 수차례 중도 포기의 위기를 맞았던 이들은 연구진의 의지와 회사의 믿음이 신약 개발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레바넥스’ 개발에 참여했던 유한양행 연구진과 간부들. 수차례 중도 포기의 위기를 맞았던 이들은 연구진의 의지와 회사의 믿음이 신약 개발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1만분의 1.

‘이런 약을 개발해 보자’는 첫 제안이 실제 신약으로 이어질 확률을 제약업계에서는 이렇게 추정한다.

업계에서는 신약 개발을 ‘확률 수렴(收斂)의 과정’ 또는 ‘1만분의 1의 도박’이라고 한다.

수년간 임상실험 성공을 거듭하면서 개발 확률이 점차 ‘1’에 가까워지기 때문.

유한양행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올해 첫 신약으로 제조 허가를 받은 ‘레바넥스’도 이런 인고(忍苦)의 과정을 겪었다.

약 15년의 세월이 걸린 이 신약 개발에 동원된 연구개발 인력과 임상실험 대상 환자는 줄잡아 3000명을 헤아린다.》

○ 무모한 도전의 시작

1991년 3월 경기 군포시에 있던 유한양행 중앙연구소는 ‘무모한’ 제안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제안은 약효가 빨리 나타나는 위산분비 억제제를 만들자는 것. 기존의 약품은 당장 효과가 나지 않는 데다 장기간 위산 분비를 억제해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회사 내부에서는 “왜 하필 시장성이 적은 십이지장궤양에 투자하려 하느냐”, “외국에서도 못 푼 숙제를 우리가 할 수 있겠느냐”는 반대 여론이 거셌다.

게다가 당시는 한국에서 이렇다 할 신약이 전혀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회사 측은 “곧 대체 약물이 필요한 시대가 올 것”이라며 연구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연구진은 회의적인 시각을 뒤로하고 기초물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 코드명 ‘YH1885’를 개발하다

여러 약물 데이터를 돌려보던 연구진은 ‘YH(유한양행의 영문 약자)1238’이라는 탄소화합물에 주목하고 동물 실험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물질을 섭취한 비글(Beagle·실험용 개)은 계속 복통을 일으켰다. 이미 3년을 허비한 연구진의 실망은 컸다. “역시 무모한 도전이었다”는 반응이 뒤따랐다.

그러나 연구진은 740여 개 물질에 대한 수년간의 동물 임상실험 끝에 결국 ‘후보물질’ 5개를 추려냈다.

유한양행 연구개발팀장 문병석(文炳錫) 박사는 “뭔가 대단한 발견 같지만 사실 아무 일도 아니었다. 가능성은 이때도 1000분의 1에 불과했다”고 회고했다.

1995년 연구진은 이 중 독성이 없는 물질 하나를 추출했다. 이른바 코드명 ‘YH1885’. 한 줄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 “이만 접자” “조금만 더…”

연구진은 또 하나의 시련과 마주쳤다.

물질의 인체 흡수력이 너무나 떨어졌던 것. YH1238의 실패 경험이 있었던 연구진에 또다시 회의감이 밀려 왔다.

게다가 이 물질로 신약을 공동개발하기로 했던 다국적 제약회사마저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개발 포기’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10년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더는 돈 낭비하지 말고 이쯤에서 접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연구진은 “자신 있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제형(약의 제조 형태)을 바꿔 실험을 거듭하던 연구진은 3번의 실패 끝에 2002년 네 번째 모형을 만들어냈다.

이 모형이 ‘대규모 임상실험 가능성’을 가름하는 유효성 테스트에 합격하자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이후 3년간 임상실험을 거듭한 끝에 유한양행은 15일 식약청에서 신약 제조 허가를 받았다. 세계 최초로 단기 치료가 가능한 위산억제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개발에 참여한 한 연구원은 “몇 년 동안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며 “제조 허가 소식을 듣자 가슴속에서 뭔가가 진하게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신약 개발 10년세월 수백억 들어

신약 개발 과정은 크게 기초탐색 과정과 전(前)임상, 임상, 신약 허가 신청 등의 단계로 나뉜다. 보통 신약 개발에는 10여 년이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비용도 수백억 원이 들어간다.

국내에서는 1999년 SK제약의 항암제 ‘선플라주’가 처음으로 식약청의 제조 허가를 받았으며 현재까지 모두 9개의 약품이 신약으로 공인받았다.

선진국의 제약회사들은 신약 개발을 위해 매출액 대비 15∼20%의 높은 투자 비율을 보이고 있는 반면 국내 제약회사들의 평균 투자 비율은 매출액 대비 4∼5% 수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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