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시장 상인들 “경기 좋아졌다고요? 천만에요!”

  • 입력 2005년 4월 28일 05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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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과 추석 당일만 쉬고 1년 내내 영업하는 소호금융팀은 평일 오후 9시 반, 토요일과 일요일은 오후 7시 반까지 근무한다. 그래서 은행의 ‘응급실’로 불린다.

주 고객은 당일 수입을 입금하거나 동전을 바꾸거나 엔화 또는 달러화를 환전하러 오는 상인들.

3년째 이 지점에서 일하는 김형운(金炯雲) 팀장은 “상인들의 입금액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라며 “계약기간이 끝나면 가게를 빼는 상인들이 많아 낯익은 얼굴이 점점 줄어든다”고 했다.

가죽가방 등 잡화를 취급하는 최모(32) 씨가 엔화를 원화로 바꾸러 왔다. 최 씨가 운영하는 가게의 손님은 대부분 일본인이지만 독도 문제가 불거진 뒤 일본인 고객이 80%가량 줄었다고 한다.

더 자세히 물으려 하자 그는 말하기도 싫다는 듯 손사래를 치다 “이 장사 10년 만에 이렇게 어려운 적은 처음”이라며 “탤런트 배용준 비슷하게 성형수술이나 해야겠다”고 했다.

이어 스포츠의류를 파는 이모(50) 씨가 상가 관리비를 내러 뛰어 들어왔다. 15일이 기한이니 열흘이나 늦었다.

이 씨는 은행 직원에게 연체료를 얹어주며 “허 참…. 관리비 미뤄본 것은 평생 처음이네”라고 말했다. 직원 월급 주고 임대료 내니 관리비가 없더란다.

“오후 10시만 넘으면 매장이 텅텅 비어요. 돈이 도대체 돌지를 않으니….”

오후 8시 반. 김 팀장이 ‘파출 수납’을 나가는 시간이다. 이 은행에 일일 적금을 들었지만 지점에 잠깐 올 시간도 없는 상인들을 직접 찾아 나가는 것.

그가 상인들에게 “오늘은 좀 어떠셨어요?”라고 묻자 십중팔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날은 옆에 있는 대형 쇼핑몰이 문을 닫는 날이어서 그나마 괜찮은 편이라는 대답이 간혹 들려왔다.

한 상인은 “많은 손님이 오가지만 실제로 물건을 사는 사람은 절반도 안 된다”고 푸념했다.

지하 1층에서 가죽지갑과 핸드백을 파는 한 여성 상인은 “1년 전부터 직원 없이 혼자 가게를 꾸려간다”며 “요즘은 새벽 손님은 포기하고 일찍 집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네 살배기 딸을 안고 화장품 가게를 지키던 김모(42·여) 씨는 “경기가 회복된다고 하도 떠들어서 기대했는데 손님들의 씀씀이는 예전만 못하다”며 “신용카드 결제도 종전엔 월 200만 원이 넘었는데 요새는 30만∼50만 원 선”이라고 했다.

4층에서 캐주얼의류를 파는 김모(30) 씨는 “여기 상인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경기가 회복된다고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가게 40여 곳을 방문한 뒤 수납 정리를 위해 지점으로 향했다.

“이거 정리하고 집에 가면 오후 11시 반쯤 됩니다. 상인들이 신나야 우리도 즐거운데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울 때가 많습니다. 경기가 빨리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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