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보니/가시타니 세이지]대학생들, 카드빚 겁안납니까

  • 입력 2004년 12월 24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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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나는 한국 대학생들과 자주 대화를 나눈다.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그런지 자산관리나 재테크 전략이 종종 대화의 주제로 오른다.

한국 대학생의 상당수는 자기 손으로 용돈을 마련하기보다 부모에게서 타서 쓰는 듯하다. 경기불황 탓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 방식은 학생 수준 이상이다. 한국 언론에서는 소비 위축으로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내가 본 대학가의 풍경은 무척 다르다. 10, 20대층의 소비는 거의 줄지 않은 것 같다. 소비의 무풍지대인 셈이다. 대학가는 소비를 자극하는 상점들로 가득하다. TV에서는 현란한 광고가 쉴 새 없이 감각을 자극하고 신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뭔가 사지 않으면 유행에 뒤떨어진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한국 젊은이들을 짓누르는 듯하다.

최근 한국 남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소비성향 조사를 보고 상당히 놀랐다. 절반 이상이 수시로 부모에게서 용돈을 타서 쓰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휴대전화나 의류 구입, 유흥비 등을 위해 빚을 진 경험이 있다고 한다. 채무 경험이 있는 대학생의 50% 이상이 현금서비스를 이용했다고 한다.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에 높은 이자를 무는 현금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은 자기관리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다.

그 조사에 따르면 한국 대학생은 용돈의 80%를 써버린다고 한다. 반면 일본 대학생의 경우 용돈의 80%를 저축한다는 조사를 얼마 전 읽은 적이 있다.

한국 대학생의 소비성향이 높은 것은 대학가에 소비를 자극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주변 요인보다 대학생의 경제의식이 확립되지 못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한국 대학생 중 올바른 신용카드 사용법이나 신용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을 받은 사람은 10% 미만이라고 한다. 대학생 대부분이 기초적인 신용관리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한국의 대학생들은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온다. 그들은 어느 정도 자유를 만끽한 후 다시 취업공부에 매달린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필요하고 중요한 경제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돈 관리는 취직한 후에 신경 쓰겠다”고 말하는 대학생이 많다.

경제관념이 부족한 대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좀 더 많은 경제력을 갖게 될 경우 신용불량자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현재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신용불량자의 양산은 젊은 시절 경제교육의 방치 때문일 수도 있다.

경제교육은 빠를수록 좋다. 중고교 때는 입시공부에 매달려야 하니, 대학시절은 본격적으로 경제 감각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적기다. 대학시절 낭만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 욕구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절제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약력▼

1958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1980년 신용카드 회사인 JCB카드에 입사했고, 지난해 6월 JCB인터내셔널 한국지사장으로 왔다.

가시타니 세이지 JCB인터내셔널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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