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운동은 왕자병… 아무도 지지안해 고립무원”

  • 입력 2004년 9월 3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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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노조와 정규직 위주의 현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등 열악한 환경에 있는 근로자들을 끌어안지 않는다면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전망이 노동운동계 내부에서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이런 자성론은 한결같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같은 기존 조직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에 일대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그 파장이 주목된다.

박승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은 계간 ‘당대비평’ 2004년 가을호에 기고한 ‘한국 노동운동, 종말인가 재생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현 노동운동은 왕자병 환자로 치부되면서 아무 지지세력도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갇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자 10명 중 한 명만 노조에 가입해 있고 나머지 9명은 이 한 명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다”며 “‘가진 소수의 비도덕성’을 질타하며 일어선 한국의 노동운동이 ‘또 다른 가진 소수’의 운동으로 바뀌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연구원은 또 “노동운동은 폭력행동을 그만둬야 하며 매년 되풀이되는 춘계투쟁, 하계투쟁의 파업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민주노총 새 지도부는 이전 집행부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더 나아가 운동철학과 방식을 전면 혁신하는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며 “비정규직 등 주변 노동자를 조직하는 풀뿌리 노동운동으로 재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혜자 전 노동사회연구소 위원은 월간 ‘노동사회’ 9월호에서 “노동계가 비정규직 차별, 일자리 창출 같은 실제 노동시장의 이슈보다 공무원 노동 3권, 직권중재, 손해배상청구소송 및 가압류 같은 노사관계 이슈에 주력할 경우 집단이기주의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1970년 분신자살한 전태일씨의 여동생인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소장도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과의 대담에서 현 노동운동의 방향을 질타했다.

그는 “영국 노조가 조직이기주의에 빠져 비정규직이나 여성 등 주변 노동자들의 권익추구를 등한시하는 바람에 결국 대중으로부터 소외됐다”며 “우리의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도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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