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신석호/현대아산과 국민주

  • 입력 2003년 9월 23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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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주(國民株)’라는 말이 한국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8년 당시 포항제철(현 포스코)이 민영화를 하면서 농어민과 근로자 자영업자 등에게 주식을 골고루 배정해 팔면서부터다. 한전도 다음해 같은 방법으로 민영화했다.

국민주는 국가가 키운 기업 이윤을 국민 전체가 나눠 가지도록 하는 공기업 공개의 수단이었지만 이후 의미가 넓어졌다. 저소득층에 대한 우선 배정 제도가 사라졌고 종로서적이나 진로 등 사기업이 소비자들의 충성심을 이용해 바닥난 자본금을 채우는 방법으로도 쓰였다.

현대아산이 이달 말까지 벌이는 자사주(自社株) 38만주 공모는 국민주의 더욱 특수한 형태다. 사기업인 현대아산도 금강산 관광 등 대북 사업 부진에 따라 일반인들에게서 돈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의 충성심이 아니라 ‘민족의 의무감’에 호소한다는 점이 다르다.

경제와 투자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현대아산의 공모주를 사는 것은 단기적으로 다소 무모하다. 투자는 위험을 감수하고 특정 자산에 돈을 넣어 수익을 추구하는 행위다. 위험의 정도가 불확실하면 피하는 것이 원칙이다.

투자 대상으로서 대북사업의 약점은 위험의 정도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것. 남북이 통합돼 평화롭게 지내는 날이 오면 큰 수익이 날 수 있다. 그러나 핵 위기와 군사 대치가 어떻게 결말날지 아직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럼에도 23일 현재까지 ‘현대아산 주식 갖기 운동’에 참가한 30여개 시민 사회단체와 회사를 통해 주당 5000원씩 10∼1만주 범위에서 주식 청약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민주 모집의 아이디어는 고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빈소를 찾은 한 남자가 “현대는 국민의 기업”이라며 10만원을 놓고 간 것에서 비롯됐다.

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은 “주식 값을 민족의 화해를 위한 개인적 분담금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투자할 만하다”며 “현대아산은 이 돈을 기업이나 남북 정부의 이익이 아닌 민족의 이익을 위해 투명하게 써야한다”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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