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정미경/주목받는 '기업지배구조펀드'

  • 입력 2003년 9월 16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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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증권가가 시끄럽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리처드 그라소 회장이 받는 1억4000만달러(약 1600억원)의 고액 연봉이 문제의 발단. 천문학적 액수의 연봉 지급을 승인한 이사회는 언론과 투자자들로부터 연일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엔론 사태 이후 기업 지배구조 개혁의 선봉장 구실을 했던 NYSE 내부에서 지배구조 문제가 불거지자 ‘개혁은 증시 회복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자성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는 최근 국내 증시에서도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18일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 주식을 매집하며 현대그룹 ‘지킴이’로 나섰던 금강고려화학(KCC)은 계속 외국인 순매도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반대로 7월 말 현대산업개발 이사회가 편법증여 의혹을 받고 있는 정몽규 회장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소각하고 사외(社外)이사 비율을 높일 것이라고 결의하자 주가가 이틀 동안 20% 가까이 폭등했다. 이달 초 LG그룹의 하나로통신 외자유치 저지 작전에 동원돼 하나로통신 주식을 대거 사들인 LG투자증권에 대해 한 외국계 유력증권사는 “주가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배구조가 기업가치와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국내 증시의 외국인 지분이 사상 최고 수준에 달하면서 지배구조의 중요성은 한층 더 부각될 것이 확실하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 한국인 펀드매니저는 “월가에서는 삼성전자, SK텔레콤 등 한국 대표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약속조차 잘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시도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펀드(CGF)는 지금까지 지배구조 개선조치가 주로 사외이사제도 등 내부통제장치에 국한된 것과 달리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의 감시를 통한 외부통제장치를 적극 가동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CGF는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해서 지배구조를 개선시킨 뒤 이에 따른 주가상승 차익을 얻는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와 공동으로 올 10월 한국 최초의 CGF 출범을 계획 중인 미국 투자회사 도이치자산운용의 존 리 전무는 “한국 기업들은 좋은 지배구조가 결국 돈을 벌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빨리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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