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공종식/월마트와 네슬레의 ‘한국不信’

  • 입력 2003년 8월 28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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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까지 본보 경제면에 연재됐던 ‘신뢰경영’ 시리즈의 취재를 위해 기자는 5월 미국 아칸소주 벤톤빌에 있는 세계 최대의 유통회사인 월마트 본사를 방문했다. 그 때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회사 규모에 걸맞지 않은 ‘본사의 건물 규모’였다.

본사는 2층 창고를 개조해 쓰고 있었고, 최고경영자(CEO)인 리 스콧 등 모든 임원이 같은 사무실에 칸막이를 하고 근무하고 있었다. 스콧씨는 운전사를 두지 않고 폴크스바겐의 소형차인 뉴비틀을 직접 운전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월마트 관계자는 “월마트의 철학은 고객에게 1센트라도 싸게 물건을 공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용 절감을 위해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회사가 정말로 고객, 직원, 지역사회와의 신뢰를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작년 본보에 연재된 ‘윤리경영’ 시리즈에 소개됐던 네슬레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최대의 다국적 식품기업 네슬레는 특히 그 회사가 진출한 국가와의 ‘신뢰’에 목숨을 거는 회사다. 한국 진출 후 15년 연속 적자가 나도 이 회사는 철수는 생각하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해외지사를 철수한 곳은 중국과 쿠바 단 두 곳뿐이다.

그런데 이처럼 ‘신뢰경영’의 대표적인 두 회사가 최근 한국 시장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월마트는 최근 노동계의 파업, 북핵 문제, 경기 침체, 할인점 시장의 포화 등이 계속되자 대한(對韓) 추가 투자계획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현재 15개인 할인점 수를 2007년까지 30∼40개로 늘리기로 했으나 이를 재고한다는 것.

한국네슬레는 임금인상폭과 종업원 이동배치 등 경영권 행사 문제를 놓고 지난달 7일부터 노조가 파업을 시작하자 25일 결국 서울사무소를 직장폐쇄했다. 나아가 유통조직만 남기고 생산기지인 청주공장을 철수하는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 이삼휘 사장은 “네슬레를 포함한 외국 기업은 법과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데 한국에서는 이 같은 원칙이 너무나 자주 훼손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오로지 ‘이윤추구’만을 지상의 가치로 삼거나, 혹은 ‘반(反)노조’ 정서가 극심한 그런 기업이 아니다. 정도(正道)경영을 꿋꿋이 추구하며 국제적인 신뢰를 쌓아 온 대표기업들이다.

이들 기업마저 한국에 등을 돌린다면 ‘다른 외국 기업들은 한국을 과연 어떻게 평가할지’에 생각이 미쳤을 때 가슴이 섬뜩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신뢰’를 잃으면 그것을 회복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공종식 경제부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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