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대란 한국경제 휘청]"납기 댈수있나" 주문취소 속출

  • 입력 2003년 5월 13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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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 파업이 장기화됨으로써 전자 타이어 석유화학 제지 등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세계적 경기 침체와 북한 핵,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으로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가 ‘물류 대란’ 상황까지 맞은 것이다.

13일 수출업체들에는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물건을 납기에 댈 수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으며, 해외 거래선 중단 우려가 점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은 이번 화물연대 파업 결과가 앞으로 한국의 대외 신뢰도에 적잖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제조업체들이 아무리 물건을 잘 만들어도 물류가 마비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며 이번 사태에 우려를 나타냈다.》

▽대외 신인도 타격 우려=메릴린치증권 관계자는 “물류 대란이 일어난 것도 문제지만 집단 이기주의를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 더 문제”라고 비판했다.

윤석 CSFB 전무도 “파업이 장기화되면 경제성장과 외국인 투자심리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정부가 대응책을 내놓아 빨리 수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작년 10월 미국에서 서부지역 항만노조가 파업했을 때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연방법원이 조업 재개 명령을 내림으로써 파업이 끝난 사례를 들면서 “한국은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현명관(玄明官) 부회장은 “당장 완성품의 수출길이 막힌 것도 문제지만 해외 거래선으로부터 신용을 잃어 수출 기반 자체가 와해될 것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전경련 등 경제 5단체 상근 부회장들은 13일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내수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수출로 버티고 있는데, 운송 마비로 수출마저 타격을 받는다면 한국 경제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해외 주문 취소 잇따라=섬유제품을 수출하는 동국무역의 정윤형 물류팀장은 “해외 주문이 계속 취소되고 있다”면서 “해외 바이어들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해도 ‘너희 문제는 너희가 알아서 하라’며 주문을 다른 데로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출을 하지 못해 합성 직물 재고만 매일 80∼1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씩 쌓이고 있는데 이제 한계에 달했다”며 “원자재 공급도 여의치 않아 며칠 있으면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일부 해외 거래선들은 납기일이 늦어지는 데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전자 타이어 섬유 등의 일부 업체들은 거래선 이탈사례가 눈에 띄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자원부는 부산항과 광양항의 마비로 하루 1억9000만달러어치가 선적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했고 전경련은 업계가 하루 4000억원의 매출 차질을 빚는 것으로 집계했다.

삼성전자 광주공장은 평소의 76%에 해당하는 물량이 운송되지 못했으며 LG전자는 70%, 대우일렉트로닉스는 53%가 출하되지 못했다. 한국타이어 등 타이어 업계 3사는 9일부터 지금까지 500만달러가량의 수출 차질이 빚어졌으며, 공장 진출입로(금산 IC)가 막히면서 14일부터는 조업 중단이 예상된다. 제지업종 역시 문제가 2, 3일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공장의 정상가동이 어려울 것으로 알려졌다.

산자부는 13일 업종별로 24시간 동향파악에 들어갔으며 전경련도 특별상황실을 설치해 업계의 애로사항 파악과 지원을 시작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홍찬선기자 hcs@donga.com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한국은 物流후진국▼

13일 오전 부산지역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긴급 모임을 가진 전국경제인연합회 무역협회 경영자총협회 대한상의 중소기협중앙회 등 경제 5단체의 부회장단은 한국 물류시스템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경제계와 함께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울 것을 요청했다.

이날 부회장단은 “화물연대 파업은 한국 물류체계의 원시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물류 선진화를 위한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부회장단은 파업사태의 원인으로 ‘제조업체-운송업체-주선업체-지입차주’로 이어지는 복잡한 다단계 알선체계를 꼽았다. 또 이런 문제점이 수십년 전부터 꾸준히 지적돼 왔지만 개선되지 않았던 만큼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중장기적 차원의 물류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부회장단은 또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컨테이너화물 처리량 세계 3위인 부산항의 위치가 흔들리고 물류중심지 육성을 통해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를 만들겠다는 국가적 목표도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마지막 해부터 추진돼 노무현(盧武鉉) 정부에 들어 국가 핵심과제로 꼽힌 정부의 동북아 경제중심 계획은 부산 광양 인천 지역에 경제자유구역을 만들어 한국을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물류 중심국가로 키워낸다는 대형 프로젝트.

이날 전경련의 현명관(玄明官) 부회장은 “한국기업의 매출액 대비 물류비 비중은 미국과 일본 기업의 두 배 수준인 14%나 될 만큼 한국은 물류 후진국”이라며 “물류합리화 없이는 기업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현 부회장은 “경제계와 정부가 협력해 국가적 차원에서 인터넷을 통한 전자 물류화, 외자유치를 통한 물류선진국의 노하우 도입 등 대대적 노력을 기울이자”고 강조했다. 또 민간과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물류혁신 태스크포스’의 구성도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많은 물류전문가들은 ‘하드웨어’ 투자에 집중됐던 국가의 물류투자 방향을 ‘소프트웨어’ 개선 쪽으로 틀어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한다. 민간 유통기업 차원에서 판매, 유통의 효율 증가를 위해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물류기법을 정부 차원에서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

LG경제연구원 거시경제팀의 김기승(金基承) 연구위원은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물류투자는 대부분 고속도로나 항만, 공항 등 물리적인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면서 “부산항 파업 같은 사태를 예방하고 정부의 동북아 경제중심 건설계획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거의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국가적 물류 시스템 개선에 관심과 투자가 집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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