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각종지표 '빨간불']공공투자 확대 失機 말아야

  • 입력 2003년 2월 9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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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한국 경제여건이 나빠지면서 올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5%대에서 4%대로 낮췄다.” (LG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 이덕청)

최근 들어 외국계 금융기관에 이어 국내 금융기관들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고 있다. 박승(朴昇)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의 대내외 변수가 조속히 해소되지 않으면 성장률이 낮아질 것”으로 경고했다.

이는 북한 핵문제와 이라크전쟁 등이 대외 악재로 작용하는 가운데 새 정부 경제정책의 불확실성, 내수부문의 위축 등 대내 변수마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정책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 경제팀은 ‘모든 일은 새 정부 몫’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현대그룹의 대북 비밀송금 사건과 관련해 정경유착, 관치금융, 총수의 독단, 주주 무시, 선단식 경영 등 우리 경제의 고질적 병폐들이 드러났지만 현 정권이나 새 정부 모두 사건축소에만 급급할 뿐 문제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대외변수야 어쩔 수 없다지만 대내변수마저 방치하는 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며 정책 당국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제 상황을 알리는 지표들, 일제히 빨간 등=최근 들어 국제유가와 종합주가지수, 기업체의 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 등 객관적 경제지표들이 일제히 위기 경보를 울리고 있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제조업체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2001년 3·4분기 이후 최저치를 보이면서 기업의 투자심리와 민간의 소비심리가 갈수록 위축되는 양상이다.

올해 성장의 견인차로 지목된 수출과 설비투자도 예상만큼 호조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수출기업의 업황전망 BSI는 81로 내수기업의 85보다도 더 비관적일 정도다. 설비투자 실행전망 BSI는 98로 작년 4·4분기(100)에 비해 소폭 하락해 설비투자가 지연될 것임을 시사했다.

지난 2년간 성장을 주도해 온 민간소비는 더욱 위축되는 모습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2월 중 산업생산과 출하는 전년 동월대비 각각 9.5%, 9.1% 상승했으나 지난해 초 이후 감소하던 재고가 증가세로 반전됐고 경기예고지표인 선행지수도 전년동월비 6.7% 떨어져 2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소비심리 위축은 도소매판매가 전월대비 2.3% 감소하고 백화점 판매액지수도 전년 동기대비 13.8% 줄어드는 등 심각하다는 것.

건설경기 BSI도 지역별로는 서울(82.6), 지방(68.3) 가릴 것 없이 100 이하였고 기업규모별로는 대형(85.0), 중견(77.9), 중소(67.2) 등 업체규모가 작을수록 체감경기가 심하게 악화됐다.

강형문(姜亨文) 한은 부총재보는 “추경예산을 편성하여 공공부문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며 “대책이 없을 경우 1·4분기 국내경기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것은 새 정부가 알아서 할 일(?)=기업의 투자심리와 민간의 소비심리가 이처럼 위축되고 있는 것은 대외여건뿐만 아니라 새 정부의 기업정책이 어떤 방향인지 종잡기 힘들어 경제환경의 불투명성이 높아진 탓도 크다는 지적이다.

S증권 애널리스트 A씨는 “경제팀 수장(首長)인 경제부총리에 대한 윤곽도 잡히지 않고 있고, 새 정부의 대기업정책 관련 발언도 노 당선자와 인수위원들 사이에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고 있어 불투명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재경부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3월이면 확실한 윤곽을 나타낼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때부터 기업이 본격적인 설비투자에 나설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박병원(朴炳元)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은 “새 정권 출범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서 지금 어떻게 새로운 정책이 나올 수 있느냐”고 말했다.

연초에 정부가 짜놓은 경제운용계획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손질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역시 새 정부 몫이라는 것.

전문가들은 환율 유가 등 기초적인 여건이 달라진 만큼 경제성장률 경상수지 물가 등 전반적인 거시지표를 조정할 시점이라고 권고하지만 재경부는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전윤철(田允喆)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도 “이라크전쟁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세계 경제 회복이 늦어지고 한국 경제도 타격을 받고 있지만 아직 경기활성화 대책을 검토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김광현기자 kkh@donga.com

▼급락하는 저축률도 '족쇄'▼

저축률이 너무 빨리 떨어지고 있다. 저축률이 낮아지면 투자가 위축되고 경상수지가 나빠져 경제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9일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총 저축률은 26.2%로, 외환위기 전인 1996년과 비교해 7.6%포인트나 하락했다. 2000년에 비해서는 불과 3년도 못 되어 6.2%포인트 줄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범식 수석연구원은 “거시적 균형관계인 황금률(golden rule)을 이용해 추정한 바람직한 저축수준은 작년에 33.0% 정도”라면서 “실제 저축률이 적정 수준보다 6.8%포인트나 낮아서 문제”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저축률 하락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하락폭(2.1%포인트)에 비해 3배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총 투자율도 2000년 28.3%에서 작년 1∼9월에는 24.6%로 낮아졌으며, 경상수지는 외환위기 이후 흑자폭이 매년 절반 정도씩 줄고 있다.

계층별로는 20, 30대 젊은층과 저소득층의 저축률 하락이 뚜렷했다. 20대와 30대는 저축 여력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심리가 확산되면서 저축률이 크게 떨어져 외환위기 전보다 각각 3.4%포인트, 3.0%포인트 낮아졌다. 이는 전체 평균 저축률 하락폭(2.2%)보다 높은 수치. 저소득층은 외환위기 이후 마이너스 저축(작년 ―1.3%)으로 돌아서면서 가계수지가 적자를 나타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정비해 기업의 투자심리를 활성화하고 성장을 촉진함으로써 저축 수준을 안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저소득층과 청년층의 저축률 하락을 막기 위해 비과세 금융상품 도입 등의 대책을 제안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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