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 '2002 경제']<4>현대상선 파문

  • 입력 2002년 12월 18일 17시 57분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긴급 대출받은 4000억원이 북한으로 건너갔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아니면 무책임한 폭로였을까.

10월초에 터진 ‘현대상선 4000억원 대북송금설’은 메가톤급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파문의 크기에 비해 확인된 사실은 많지 않다. 현재 감사원이 현대상선에 대해 자금의 실제 용처를 확인하고 있지만 진실이 드러날지 의문이다.

파문은 국정감사장에서 시작됐다. “2000년 6월 산업은행으로부터 빌린 4000억원은 현대상선이 쓴 돈이 아니니 책임질 수 없다”는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의 한마디가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를 통해 처음 세상에 알려지고 몇 가지의 정황이 보태지면서 ‘대북 비밀 지원설’로 비화했다.

그러나 진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폭로-반박의 줄다리기만 계속됐고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김충식 전 사장 등 관련자들의 엇갈리는 증언은 사태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4000억원 대북지원설’은 그 실체적 진실과는 별개로 우리 기업경영과 금융관행의 불투명성을 드러낸 사례이기도 했다.

현대상선은 4000억원 대출 사실을 재무제표에 누락시키는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어려운 경영 형편에서도 은행에서 꾼 돈으로 계열사에 무리하게 지원해준 사실들이 밝혀졌다.

산은은 대출연장 과정에서 무자원 입금 처리했으며 동일계열여신한도 여신심사 등을 교묘히 피해 가는 등 각종 위규와 편법을 자행했다. 주채권은행과의 협의 과정을 생략했고 각종 보고자료에도 대출 사실을 누락시켰다. 정치권 개입설도 제기됐다.

대북지원설의 원인이 무리한 대북사업이었든, 부당한 계열사 지원이었든 그 뿌리는 결국 전횡적 오너경영이었다. 99년까지 20여년간 흑자를 내온 현대상선이 순식간에 부실해지고 각종 의혹의 주범으로 전락한 것도 오너의 독단경영 탓이었다.

현대상선은 자동차 운송선을 매각하면서 경영위기에서 벗어나 정상화되고 있다. 그룹의 지주회사 노릇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현대상선의 선언도 있었다. 그러나 대북 비밀지원설의 진실을 알고 있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은 아직 외국에 머물며 안개 속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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