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전략]외국기업 52社 CEO설문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8시 56분



《동아일보가 무역협회 부설 무역연구소(소장 현오석)와 공동으로 한달에 걸쳐 실시한 설문조사에는 미국계(24) 독일계(11) 일본계(6) 스웨덴계(3) 네덜란드계(3) 영국계(2) 이탈리아계(1) 홍콩계(1) 스위스계(1)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기업들이 골고루 참여했다》

이번 조사의 가장 큰 의의는 현재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이 그동안 체험한 투자환경을 바탕으로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계획에 대해 종합적인 의견을 내놓은 것.

예컨대 중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한국보다 한 발 앞선 경제특구 전략을 펼치고 있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한국은 지금의 ‘동북아 중심지’ 계획안보다 훨씬 획기적인 투자유치 청사진을 내놓아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갈 길 먼 ‘허브 코리아(Hub Korea)’〓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전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조사대상 최고경영자(CEO)의 45.1%가 ‘대충 아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잘 모르고 있다’‘전혀 모르고 있다’는 응답도 23.5%에 달했으며 ‘매우 자세히 알고 있다’‘잘 알고 있다’는 31.4%에 불과해 그동안 이 계획에 대한 홍보가 크게 미흡했음을 보여줬다.

계획의 성공 여부에 대해서는 조사대상 CEO의 49%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어느 정도 가능성’은 질문에 대한 5개의 보기 중 중간을 나타내는 것으로 대다수 CEO들은 지지도 반대도 아닌 미지근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성공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응답(23.5%)이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23.5%)과 팽팽히 맞서고 있어 외국기업 CEO들사이에서 회의적 시각이 상당히 넓게 퍼져있음을 보여줬다.

한국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 부상할 경우 여타 지역을 선도할 가능성이 있는 산업에 대해서는 정보통신·영상(46.2%)과 연구개발(R&D)(43.5%) 분야가 각각 1위와 2위에 올랐다.

▽불리한 사업환경〓외국기업들이 ‘동북아 중심지’ 계획에 대해 유보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중국 일본 등 경쟁 국가들에 비해 한국이 매력적인 투자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 향후 3년간 중국 일본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 지역 전반에 대한 투자가 ‘매우 증가’할 것이라고 답한 CEO는 21.6%인 반면 한국만을 대상으로 한 투자가 ‘매우 증가’할 것이라고 본 CEO는 2%에 불과했다.

이는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과 직결되는 문제로 ‘한국에서 사업하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대해 49%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보통 수준’이라고 답했다. 또 ‘만족’과 ‘불만족’이라는 응답도 똑같이 25.5%씩으로 나타나 한국의 사업환경이 ‘평범 그 자체’인 것으로 평가됐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사업환경을 10개 부문으로 나눠 평가했을 때 시장성과 숙련된 인적자원 활용도 항목에서 ‘만족’ 또는 ‘매우 만족’이라는 응답이 각각 55.7%와 51.9%로 최고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 2개 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8개 분야에서는 외국기업 CEO들의 불만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행정규제에서는 ‘불만족’ 또는 ‘매우 불만족’의 응답이 각각 75%와 53.9%에 달해 불만족도 1위와 2위로 나타났다. 이밖에 임금(48%), 세금(42.3%), 비즈니스 관행(36.5%), 통관 및 관세(36.5%), 외환 및 금융(23.1%), 물류(23.1%) 등 나머지 6개 항목도 불만족도가 만족도를 모두 앞지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불편한 생활여건〓이번 조사에 참여한 대다수 외국기업인들은 한국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투자환경뿐만 아니라 생활여건에서도 획기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내 생활여건을 △자녀교육 시설 △의료시설 △이민행정 △거주환경 △문화관광 시설 △사회 개방성 등 6개 부문별로 평가하는 질문에서 ‘만족’과 ‘매우 만족’을 합친 응답 비율이 40%를 넘는 항목이 단 1개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불만이 큰 항목은 자녀교육여건과 관련된 것으로 조사대상 CEO의 62.2%가 ‘불만족’ 또는 ‘매우 불만족’이라고 답했다. 이밖에도 의료시설(36.2%), 거주여건(31.9%) 이민행정(26.1%) 등에 대한 외국인들의 불편 정도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영어실력을 키워라

‘영어 실력을 키워라.’

경영 애로사항을 말해달라는 주관식 질문에 대해 외국기업 CEO들이 일제히 내놓은 답변이다. CEO들은 한국이 홍콩 싱가포르에 비해 외자유치에 뒤지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영어구사 능력 부족을 꼽았다.

한독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디트리히 폰 한스타인 한국바스프 사장은 “한국은 영어 공용화 교육을 서둘러야 한다”면서 “영어로 작성된 정부 문서(특히 법령 분야)를 쉽게 접할 수 있다면 한국 정부와의 업무 효율이 빠른 속도로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3M의 마이클 켈리 사장은 “특히 한국 중소기업들의 영어능력이 아시아 다른 나라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져서 상담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고 답했다. 다른 외국기업 CEO들도 “다른 비즈니스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영어장벽이 있으면 외국기업들은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면서 “한국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 부상하는데는 언어의 국제화가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외국인 CEO 3인의 '허브 코리아' 훈수

●버든 듀폰코리아 사장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편리한 생활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 도착한 외국 기업인들은 공항에서부터 불편함을 느낀다. 외국 기업인들은 외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공항에서 두시간 가량의 수속을 마쳐야 한다. 자녀교육 문제도 쉽지 않다. 한국 내 외국인 학교는 언제나 만원이고 입학 여부에 대해 부모들에게 신속하게 통보해 주지도 않는다. 문제는 이같은 늑장 행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기업하면서 가장 큰 불만은 조세 문제이다. 현재 대다수 외국기업은 이중과세 부담을 안고 있다. 즉 똑같은 세금을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홍콩과 싱가포르 정부는 이중과세 문제를 이미 해결했다. 한국 정부에도 이 문제를 여러 번 건의했지만 귀기울여 듣는 관계자가 없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로테 '루프트한자' 지사장

“외국기업인이 한국에서 생활하기 힘든 것은 한국인과의 ‘정서적’ 단절 때문이다. 한국인이 기뻐하는 것은 함께 기뻐하고, 한국인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것은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돼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한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정보격차가 먼저 해소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문이든 방송이든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영문 미디어가 있어야 한다.

정서적 단절을 제외하면 한국의 전반적인 비즈니스 환경은 ‘감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10년 전 한국 정부가 인천공항을 2001년에 개항하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믿지 않았다. 그런데 정확히 예정된 날짜에 공항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봤고 한국인이 하는 일에 대한 신뢰도가 커졌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다카스기 한국'후지제록스'사장

“가격과 품질이 똑같은 넥타이 2개가 있다고 치자. 하나는 이탈리아에서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만들었다. 어느 넥타이를 사겠는가. 한국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로 부상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이미지 개선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국가 이미지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동북아의 ‘허브(Hub)’가 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외국인들에 비친 한국 이미지는 ‘불타는 화염병’ ‘학대받는 외국인 노동자’ ‘남북 대치’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이 발전시켜 나가야 할 이미지는 정보기술(IT) 강국이다. 동북아 허브 부상을 위한 또 다른 필수조건은 교육이다. 그 중에서도 영어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외국인과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돼야만 국제 비즈니스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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