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런 FTA 왜 맺나

  • 입력 2002년 10월 24일 18시 32분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됐으나 마침내 끼리끼리 손잡는 국제 경제무대에서 외톨이 신세를 면하게 됐다는 안도감보다 그토록 부실한 협정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을까 하는 의문이 앞선다. 미흡한 결과를 내놓고도 처음으로 외국과 FTA를 맺게 됐다며 생색을 내려는 정부의 행동이 안쓰럽기만 하다.

정부는 협상과정에서 칠레의 전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허둥대다 막판에 중요한 금융서비스 투자 개방을 놓치고 말았다. 칠레의 방침을 뒤늦게 확인한 뒤 서둘러 금융을 제외하되 2년 후에 재협상하자는 카드를 내밀었으나 이 또한 관철하지 못했다. 한심한 협상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칠레가 올 4월 유럽연합(EU)과 FTA를 체결하면서 금융분야를 포함시킨 전례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칠레산 사과 배 쌀, 한국산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관세 철폐 대상에서 빼고 금융서비스 투자마저 제외하다 보니 이번 FTA는 구멍이 숭숭 뚫린 불량품이 되고 말았다. 금융분야를 제외하면 FTA가 아니라 ‘관세자유협정’ 수준이 될 것이라던 재정경제부 관리들이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다.

물론 자동차 휴대전화를 비롯한 공산품 수출이 늘어나는 등의 성과는 있겠지만 결코 만만치 않을 후유증이 문제다. 우선 칠레산 농산품의 유입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민의 반발을 어떻게 해소할지 걱정이다. 정부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며 불신을 키운 측면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이번 협정이 앞으로 다른 나라와 FTA 협상을 벌일 때 나쁜 선례로 작용해 우리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크다.

한-칠레 FTA는 현 정권 임기 안에 매듭지어야 한다는 ‘정치적 시한’에 묶여 허둥댄 졸속 협상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보여줬다. 공직자들은 임기말 정권을 위해 ‘무언가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무책임한 자세가 당장 내년부터 국가와 국민에게 끼칠 피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