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JAPAN]품질 내세운 일제 '밀물'

  • 입력 2002년 4월 24일 15시 10분


서울 강동구 천호동 하이마트 매장. 대학생 두 명이 CD플레이어를 사기 위해 제품들을 비교하고 있었다.

“국산 제품이 애프터서비스(AS)가 쉽지 않을까?”

“그래도 일본제품이 나을 것 같은데. 요새는 AS센터도 많이 두고 있다고 하잖아.”

결국 이들은 상의 끝에 파나소닉 19만8000원짜리 제품을 선택했다. 가격은 한국 제품보다 1만원 비쌌다.

하이마트 매장 이재원 영업부장은 “자유롭게 수입이 가능해져 가격도 큰 차이가 없어지면서 일본제품 판매가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 T전자상가의 함수만씨는 “수입선 다변화 제도가 폐지된 후 판매되는 수입품 중 90% 이상을 일본산 전자제품이 휩쓸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때 일본으로 여행가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코끼리 밥솥’을 하나씩 사들고 오던 시절이 있었다. ‘입소문’으로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국내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제(美製)가 좋다하면 금세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팔기 시작하거나 수입품이 들어오는데 일본 제품은 들여올 수가 없었다. 한국이 78년 5월 1일부터 시행한 이른바 ‘수입선 다변화 제도’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는 만성적인 대일무역 역조를 개선하고 국내 업체와 제품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보호장치로 ‘수입선 다변화 제도’라는 울타리를 만들었다. 다변화 품목으로 지정되면 연구용이나 시제품용, 국산화에 필요한 경우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 등 경제의 개방화 자유화 추세에 따라 99년 6월 30일 이 제도를 없앴다.

다변화 품목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았던 품목들은 크게 자본재와 소비재로 나뉜다. 보호막이 없어진 지 약 2년이 지난 현재 한국 제품들은 어떻게 됐을까.

‘자본재 품목들은 충격에서 벗어나 차츰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지만 소비재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산업자원부가 최근 내린 성적표다.

▽급증하는 일제 소비재 제품 수입〓‘다변화 보호막’이 없어진 후 상당수 소비재 품목들이 물밀듯이 한국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산업자원부의 다변화품목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전기밥솥의 경우 98년 46만6000달러어치를 수출하고 2000달러어치를 수입, 46만4000달러의 흑자를 보였다. 그러나 99년에는 252만7000달러, 2000년에는 436만1000달러의 적자를 나타냈다.

3000㏄ 이상 승용차는 지난해 1767만1000달러어치를 수입하고 22만3000달러어치를 팔았으나 일본 승용차 시장이 전면 개방된 올해들어서는 ‘수출 0’이 됐다.

산자부가 98∼99년까지 수입선 다변화 품목으로 남아있던 48개 품목중 21개 소비재 품목을 대상으로 집계한 결과 다변화 제도 폐지 전인 98년에는 4179만5000달러 흑자를 보였다. 그러나 99년 5498만9000달러 적자로 돌아섰으며 2000년 1억2570만8000달러, 2001년 1억3167만6000달러로 적자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소비재 제품이 일본 품목별 경쟁력 지표로 사용되는 무역특화지수(TSI)에서도 다변화 보호막이 없어진 충격을 알 수 있다.

소비재 21개 품목의 전체 TSI는 98년 0.79에서 99년 -0.31로 떨어졌다. 이어 2000년 -0.38, 2001년 -0.45로 떨어졌다. 지수가 마이너스이면 수입이 수출보다 많고 -1이면 수입만 있고 수출은 전혀 없는 상태다. 따라서 소비재 제품의 경우 마이너스 지수 숫자가 커지는 것은 수입되는 일제 제품(가격 기준)과 일본으로 수출되는 제품간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디지털가전사업부 박종갑 부장은 “현재 삼성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PDP와 LCD 제품에 더욱 주력해 전체 삼성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며 “서비스와 물류, 고객관리를 철저히 하면 앞으로 국내 시장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경쟁력이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재는 ‘선전(善戰)’중(?)〓산자부의 TSI 지수 조사에 따르면 자본재 20개 품목의 지수는 98년 -0.48에서 99년 -0.59, 2000년 -0.68로 떨어졌으나 지난해 -0.56으로 반전됐다. 올해들어서도 1∼2월만 보면 -0.24까지 나아졌다.

지난해의 경우 자동차부품, 볼 베어링, 선박용 엔진부품 등 20개 자본재 제품의 수출은 D수출은 9910만 8000달러로 전년(9609만달러)보다 3.1% 늘어났으나 수입은 3억 4806만3000달러로 전년(5억 118만3000달러)보다 30.5%가 줄어 TSI 지수가 크게 개선됐다.

자동차 부품의 경우 98년 -0.43에서 2000년 -0.46으로 떨어졌다가 2001년 -0.23으로 반전된 후 올해(1∼2월)는 0.21로 흑자로 돌아섰다.

자동차부품협동조합 고문수 상무는 “다변화 품목으로 지정됐던 자동차 부품을 포함한 전체 자동차 부품의 지난해 대일(對日) 수지는 약 10억달러의 흑자”라며 “다변화 제도에 따른 보호와 국내 자동차 및 부품업계의 국산화 노력, 기술개발 등에 따라 자동차 부품은 전체적으로는 4∼5년전부터 흑자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산자부 수입과 김경종 과장은 “다변화 제도 시행 이후 자본재 업체들은 경쟁력을 키워 보호막이 없어진 후에도 차츰 뒷심이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과장은 또 “일부 소비재들도 한일간 통관기준으로는 적자지만 국내 업체들이 생산 공장을 중국 등으로 옮기면서 국내에서 수출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TSI 지수가 경쟁력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對日 무역특화지수(TSI)
자본재소비재
1998년-0.480.79
1999년-0.59-0.31
2000년-0.68-0.38
2001년-0.56-0.45
TSI는 자본재 20개, 소비재 21개 수입선 다변화 품목을 대상으로 한 것임.
자료:산업자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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