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대기업 리더들]금호그룹 '형제공동 경영' 잡음없어

  • 입력 2002년 4월 8일 18시 29분


박찬구 사장
박찬구 사장
한국 대기업들은 창업주가 작고하거나 은퇴하면 대개 자식들간에 그룹 분리의 수순을 밟는다. 계열 분리를 하지 않더라도 소그룹 체제를 구축, 2세들끼리 영역을 나누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점에서 금호그룹은 독특하다.

박인천(朴仁天) 창업주가 타계한 것은 1984년 6월. 그로부터 18년이 지났지만 금호그룹 안팎에서는 그룹 분리의 작은 신호음조차 잡히지 않는다.

금호그룹 경영체제는 한마디로 ‘형제 공동경영’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 금호그룹의 지주회사에 해당하는 금호석유화학 지분도 박 창업주의 아들 5명중 경영에 참여한 4형제가 3.06∼3.11%씩 비슷하게 나눠 갖고 있다.

고 박인천 창업주의 장남인 박성용(朴晟容) 명예회장은 84년 그룹 회장에 취임, 당시 6900억원이던 그룹 매출을 95년 4조원대로 끌어올렸다.

또 항공업을 그룹의 핵심사업으로 일궜지만 “65세에 경영권을 넘긴다”던 약속을 실천, 96년 명예회장으로 한발 물러앉았다.

미국 예일대 경제학박사 출신으로 기업경영에 뛰어들기 전에 대통령경제비서관과 서강대교수 등을 지냈던 박 명예회장은 요즘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문화 교육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박인천 창업주의 차남인 박정구(朴定求) 현 그룹회장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기업 경영에 뛰어들어 그룹의 구석구석을 한눈에 꿰고 있다.

회장에 취임한 이후에는 바이오산업 등에 적극 진출하고 계열사간 과감한 합병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또 본격적인 ‘중국붐’이 일기 전 일찌감치 중국에 눈을 돌려 상당한 기반을 닦았다.

지난해 폐질환으로 미국에서 7개월간 치료를 받은 뒤 재발을 막기 위해 사무실에는 거의 출근하지 않지만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은 직접 하고 있다.

3남인 박삼구(朴三求) 그룹 부회장은 그룹의 크고 작은 일을 챙기고 박정구 회장의 대외활동 공백을 채우느라 바쁜 나날을 보낸다.

5형제 가운데 성격이 가장 활달한 박 부회장은 평소 평사원들과도 농담을 자주 주고받는다. 과음도 마다하지 않지만 다음날에는 오전 7시반에 어김없이 출근, 업무보고를 받는다.

4남인 박찬구(朴贊求) 금호석유화학 사장은 다른 그룹의 구조조정본부에 해당하는 비전경영실 사장도 겸직하고 있다.

박 사장은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통계학을 전공, 수치에 밝으며 대외활동에는 적극 나서지 않는 편. 재무상황을 꼼꼼히 챙기며 재무구조 개선에 앞장서 금호석유화학의 부채비율은 금호산업 등 다른 주력계열사에 비해 낮다.

5남은 아주대 교수를 지낸 박종구(朴鍾九) 기획예산처 공공관리단장으로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대주주 가문 3세들 가운데는 아직 금호그룹에서 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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