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低 가속화에 위안화까지 평가절하땐 한국경제 심각한 타격

  • 입력 2001년 12월 26일 18시 11분


중국 위안(元)화와 일본 엔(円)화가 포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 통화당국이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수출을 통해 경기를 띄우겠다’는 뜻으로 결과적으로 자신의 부담을 인근국에 떠넘기는 ‘근린궁핍화(近隣窮乏化·beggar my neighbor)정책’의 효과를 낳는다.

여기에다 위안화가 엔화 속락(續落)을 견디다 못해 평가절하 쪽으로 돌아설 경우 중국과 직접적인 무역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은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일본,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최근 엔화 약세(달러당 엔화환율 상승)는 미일 양국 정부의 합작품인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이 장기불황의 타개책으로 엔화 가치하락을 통한 수출촉진을 내걸고 미국이 이를 묵인한다는 것. 일본은 지난달부터는 중국 측에 “위안화 가치를 올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이른바 ‘국제적인 의무’를 다하라는 것.

사실 미국 경제의 침체로 전 세계가 무역수지 악화에 허덕이고 있지만 중국은 올 1∼10월 178억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냈다. 같은 기간에 중국의 대일(對日) 무역수지 흑자도 2조6700억엔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일본의 경제단체연합회 등에서는 중국 정부가 환율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지만 않는다면 중국의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 때문에 위안화 가치는 자연스레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정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선진권이 모두 엔화 약세를 묵인하고 있다”며 “중일 간 ‘환율전쟁’은 경우에 따라 중국과 다자국 간 기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 “위안화 현 수준 지킨다”〓중국 측의 현재 최대 관심사는 위안화의 안정. 여기에는 현재의 위안화 가치수준이 중국경제의 경쟁력 확보에 적당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위안화는 중국이 94년 1월 이중(二重)환율제를 포기하면서 대폭적인 평가절하를 단행한 뒤 달러당 8위안대(26일 현재 달러당 8.27위안)를 지켜왔다. 공식적으로는 전날 종가의 ±3% 내에서 움직이는 관리변동 환율제이지만 사실상 고정환율제나 마찬가지. 중국 정부는 위안화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경상수지 흑자가 날 때마다 외환시장에 개입, 달러를 사들였기 때문에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세계 2위를 달리고 있다.

이 같은 중국측 태도에 비춰볼 때 일본의 요구를 들어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와 관련, 주룽지(朱鎔基) 중국총리는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경제 문제는 스스로 풀어야 한다”고 밝혀 일본측이 내부문제를 대외적으로 풀려 한다는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시했다.

▽자칫하면 평가절하 도미노 우려〓중일 간 환율전쟁은 △양국의 기술력 차이로 인해 수출시장 경합품목이 많지 않고 △일본의 거대기업들 대부분이 중국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전개방향을 전망하기가 쉽지는 않다.

한국산업은행 상하이지점의 민경동 지점장은 “중국도 예년과 같은 무역수지 흑자를 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 환율 문제에서 일본측의 위안화 평가절상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송치영 국민대 교수는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태국이 바트화를 평가절하한 뒤 대만이 대만달러의 가치하락을 유도하는 ‘경쟁적 평가절하’에 나서는 바람에 한국의 대외수지가 더욱 악화됐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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