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4년 경제위기 끝났나(上)]재정지출 늘려 성장률 겨우 유지

  • 입력 2001년 11월 28일 18시 52분



《97년 12월 3일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당시 총재는 한국에 583억달러의 긴급자금을 지원하면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후 4년 동안 대우 기아 한보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고 은행 11개를 포함한 590개 금융기관이 문을 닫았거나 다른 금융기관과 합쳐졌다. 눈물겨운 ‘금 모으기 운동’도 펼쳐졌고 15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도 투입됐다. 이처럼 피와 땀을 흘린 결과 한국경제는 외환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금융·실물경제의 위기는 아직 진행형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경제가 4년 동안 어떻게 변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알아본다.》

한국경제는 ‘IMF 모범생’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97년 12월 단돈 39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은 이미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외채는 1592억달러에서 1250억달러로 줄었다. 외평채에 붙는 가산금리는 3.45%포인트에서 0.9%대로 떨어졌다. IMF로부터 빌린 돈 195억달러를 8월 23일에 모두 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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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재정지출 늘려 성장률 겨우 유지
- <中>은행 돈 벌었지만 관치 심화
- <下>기업 체질개선 갈길 멀다

재정경제부 김용덕(金容德) 국제업무정책관은 “외환위기를 완전히 극복했으며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거시경제도 눈부시게 좋아졌다. 경상수지는 96년에 230억달러, 97년에 82억달러나 적자였지만 98년부터 흑자 기조로 돌아섰다.

한때 200만명에 육박하던 실업자도 70만명 선으로 줄었다. 외환위기 직후 280선까지 폭락했던 종합주가지수는 2000년 초 1000포인트를 넘었다가 660선을 유지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965원에서 1270원 선으로 떨어졌다. 98년에 -6.7%로 곤두박질쳤던 경제성장률은 작년에 8.8%로 높아졌다. 올해는 2.5% 선으로 떨어질 전망이나 전 세계적 경제침체 속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가 깨지고 몸집 불리기보다는 수익성을 우선할 정도로 기업의 인식도 바뀌었다. 금융기관 부실채권도 112조원(98년 3월)에서 27조원(2001년 9월)으로 줄었다.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7.04%(97년 말)에서 10.53%(2000년 말)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97년 말 B+에서 11월13일 BBB+로 높였다. 숫자로 볼 때 한국은 ‘IMF 위기’를 거의 극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난 4년 동안 구조조정을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3·4분기중 경제성장률 1.8%의 실적 절반은 재정지출 확대에 의한 것이다. BBB등급 이하의 많은 기업들은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해주지 않으면 회사채를 발행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한국은행은 올 상반기 중 영업에서 번 돈으로 이자도 못내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도는 기업이 전체 제조업체의 30.0%나 된다고 밝혔다. 총수요 관리에 의해 성장률이 유지되고 있을 뿐 구조조정으로 공급능력과 경쟁력은 높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S&P의 로버트 리처즈 북아시아 기업평가 담당 전무는 “한국 기업의 부채비율을 50∼100%로 낮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화증권 진영욱(陳永郁) 사장도 “공적자금 투입으로 국유화된 은행을 이른 시일 안에 민영화하고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나 구조조정촉진법 등에 따른 자금지원으로 연명하고 있는 한계기업을 정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내년에 월드컵과 부산아시아경기, 지방자치단체장 및 대통령 선거 등이 잇따라 이런 마무리를 제대로 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서강대 국제대학원 조윤제(趙潤濟) 교수는 “구조조정은 단기 고통을 겪더라도 장기 건전성을 위해서 필요한데 앞으로 1년간 정치 일정과 경기 사이클 때문에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외국의 시각 "한국 성장률 호조 자만해선 안돼"▼

“한국의 3·4분기 경제성장률이 1.8%로 예상보다 높았지만 경기가 조기에 회복될 것으로 지나치게 자만해서는 안 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 등 주요 외신들은 한국경제가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고 있지만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3·4분기 성장률은 당초 전망(1% 내외)보다 높았지만 2년반 만의 최저치이며 앞으로 한국경제는 미국의 경제상황 등 외부여건과 한국정부의 개혁이행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

IHT는 “설비투자와 수출이 회복되지 않고 있어 한국경제는 호황으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보도했다. “수출이 늘지 않으면 한국경제의 성장은 내년 상반기에 다시 둔화될 수 있다”는 것.

FT도 “3·4분기의 1.8% 성장률은 작년 동기의 9.2%보다 훨씬 낮다”며 “한국경제가 내년에 어떻게 될지는 미 경제의 회복여부에 크게 달려있으므로 자만을 경계해야 한다”고 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이 다른 아시아국가들에 비해 경제상황이 건실할지 모르나 9·11 테러 이후 심화된 세계경제 둔화의 여파로부터 차단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우존스뉴스도 “2% 미만의 성장률은 한국경제가 세계수요 감소 및 기업수익 하락으로 흔들리고 있으며 수출 및 미국 경제 전망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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