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의 명품이야기]'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 입력 2001년 10월 25일 18시 51분


위대한 예술가 미로나 피카소처럼 스페인에서 태어나 주로 프랑스 파리에서 활약한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프랑스 예술패션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1895년 바스크 해안의 작은 어촌인 ‘게타리아’에서 태어난 발렌시아가는 재봉사였던 어머니를 보며 어려서부터 재단과 봉제를 배웠다. 그는 12세에 카사토레라는 후작 부인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그녀의 후원으로 살롱을 열게 된다.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발렌시아가는 1937년 파리로 자리를 옮겼다.

단순·발랄하면서도 여성적인 곡선을 강조한 디자인은 옷의 진가를 아는 ‘까다로운’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설계에서는 건축가이고 형태에서는 조각가이며 색채에서는 화가, 조화에서는 음악가, 절도에서는 철학자여야 한다’는 발렌시아가의 말은 완벽주의와 충실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발렌시아가의 특징인 ‘형태의 아름다움’은 완벽한 재단에 의해 더욱 돋보였다. 발렌시아가의 또 다른 특징은 인체의 특별한 부분들을 옷과 옷 이외의 것이 함께 부각되도록 구조화한 것이다. 새로운 관능미를 창조하는 의미로 목이 훤히 드러나는 디자인을 해 화려한 목걸이를 위한 장소를 남겨뒀고 유명한 4분의 3 소매(7부 소매)는 여성의 손목과 손짓을 매력적으로 강조한다. 이러한 디자인 요소들은 크리스티앙 디오르, 지방시 등 유명디자이너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심프슨 부인, 재클린 케네디, 그레이스 켈리 등 유명 인사들에게 사랑받았고, 고객들만큼이나 까다로운 디자이너였던 발렌시아가는 프레타포르테(기성복)를 거부하고 쿠튀르(맞춤복)를 고집했다. 발렌시아가는 1972년 스페인 프랑코 장군의 손녀를 위한 웨딩드레스를 마지막 작품으로 세상을 떠났다.

앙드레 쿠레주와 에마뉘엘 웅가로 같은 제자를 양성한 발렌시아가는 옷을 하나의 예술작품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패션계의 대부라 할 수 있다. 침체기에 있었던 발렌시아가사는 1987년 프레타포르테를 시작하면서 회생했고 1997년 니콜라게스키에르가 디자인을 맡으면서 재도약한다.

50년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그 시대 가장 앞서가는 여인들을 위해 옷을 만들었듯 발렌시아가사가 개성 강한 현대 여성들을 더욱 아름답게 빛내 주길 기대해 본다.장 현 숙(보석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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