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잃은 현대號…어디로 항해할까

  • 입력 2001년 3월 22일 00시 29분


사옥의 조기
사옥의 조기
현역 경영인시절에 이미 ‘신화적인 인물’이 된 정주영(鄭周永)전 현대명예회장이 작고함에 따라 이제 현대그룹은 진정한 2세 경영체제로 접어들게 됐다.

창업주가 사망했다고 해서 현대그룹의 외양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정 전회장은 이미 법적으로 현대그룹의 각 계열사를 자식들에게 맡겼고 자식들이 경영을 맡아왔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정 전명예회장은 지난해 5월 현대투신 부실사태 때 ‘3부자 경영일선퇴진’을 선언한 이후 그룹경영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러나 존재감 그 자체만으로도 그의 그림자는 현대 내에 깊숙이 드리워져 있었다.

정 전명예회장은 90년대 후반부터 현대 각 계열사의 일상적인 경영은 정몽구(鄭夢九) 정몽헌(鄭夢憲) 두 아들과 가신그룹에 맡겼다. 그러나 중요한 결정들은 모두 그의 허락을 얻어야 했고 일부는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이 때문에 2세들은 자신만의 경영스타일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창업세대가 아닌 재벌 2세라는 한계 때문에 아버지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

▽재산분할〓대부분의 재산이 이미 상속됐기 때문에 재산분할을 둘러싼 다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밖으로 드러난 정 전명예회장의 재산은 2000억원 정도의 현찰과 약간의 부동산이 전부.

정 전명예회장은 생전에 김재수(金在洙) 구조조정본부장에게 “현대자동차 주식을 매각한 대금은 우선 현대건설의 회사채를 매입,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해소에 쓴 뒤 현대건설이 회복되면 이 돈으로 어린이재단 등 공익을 위해서 쓰라”고 말했다. 유언장이 공개돼봐야 알 수 있겠지만 정 전명예회장은 이런 뜻을 이미 유언장에도 반영해놓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룹의 앞날〓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 현대그룹, 현대중공업 등으로 가닥이 나누어졌다. 정통성을 잇는 정몽헌 회장의 계열사가 부실의 늪에 빠진 것이 특징이다. 현대그룹의 모기업인 ‘현대건설의 재생’이 급선무.

시장에서는 현대건설이 예전처럼 활력 있는 기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상당수 있다.

건설업이 사상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시점에서 재생작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애널리스트들의 분석. 현대건설에 기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고유가로 인한 오일달러 시장이 열리는 제2의 중동특수가 그것.

현대건설측은 구조조정을 통해 우선 국내영업 부분을 축소한 뒤 해외건설 시장에서 제2의 중동특수에 편승한다면 ‘세계적인 건설회사’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현대전자도 안심할 수 없다. 반도체가격이 떨어져 현대전자의 앞날도 불투명하다. 대북사업의 수익성 확보도 시급한 과제다.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 소그룹도 넘어야할 산이 많다. 우선 자동차산업 자체가 세계적인 메이저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이미 국내시장은 르노와 포드가 진출, 현대의 아성을 넘보고 있다. 당장 국내시장 점유율의 50%를 내줘야 한다는 예측도 있다.결국 국내시장을 최대한 수성하면서 국내시장에서 잃은 것 이상으로 해외에서 얻어야 하는 공격적인 전략 외에 달리 택할 길이 없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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