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전력난은 정책실패탓"

  • 입력 2001년 2월 23일 18시 31분


‘미국 캘리포니아 전력난은 시장실패가 아니라 정부실패 때문에 빚어졌다.’

이희범(李熙範)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과 한전 노사대표 등 실태조사단은 최근 미국을 다녀와 23일 이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한전 노조와 일부 전문가들이 한전 민영화를 1년 앞두고 “섣부른 민영화는 캘리포니아 전력난보다 더욱 심각한 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함에 따라 현장실사에 나선 것.

98년 전력산업에 대한 여러 규제를 푼 캘리포니아는 최근 들어 전력예비율이 1.5%이하로 떨어지고 단전사태로 지역경제가 비상에 빠지는 등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교통신호등이 멈춰 경찰이 수신호로 차량을 운행시키고 엘리베이터가 멈춰서고 은행 현금인출기가 작동을 멈출 정도.

▽가격정책의 실패〓캘리포니아 전력난은 전기 도매가격은 자유화해놓고 소매가격은 동결시킨 주정부의 잘못된 가격정책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주당국은 98년 발전회사와 전력판매회사를 분리하는 등 전력산업에 대한 규제를 풀면서 소비자요금을 2002년까지 5년간 동결했다. 전기료가 오를 경우 주민들이 반발할 것을 우려한 정치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선택은 시장의 왜곡을 가져왔다.

캘리포니아주의 양대 전력회사인 남가주에디슨사(SCE)와 태평양가스전기사(PG&E)는 자신들의 발전시설을 다른 주 발전회사에 팔아넘기고 중간공급자(전기소매회사)로 변신했다. 이후 2년간은 별문제가 없었지만 작년 봄부터 천연가스 및 유가 폭등으로 전기도매가격이 급상승하면서 문제가 터져나왔다.

발전회사는 전기공급가격을 8배까지 올렸지만 중간공급자는 소비자 가격을 올릴 수가 없었다. 결국 두 회사는 120억달러라는 엄청난 빚을 지게 됐고 부도를 선언했다. 규제완화 과정에서 안전장치로 마련해놓은 소비자가격 규제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것.

▽위험관리 실패〓규제완화후 중간공급자들은 전기도매가격의 폭등에 대비하기 위해 발전회사와 일정한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받는 장기공급 계약을 추진했다. 그러나 주정부가 발전회사의 맹렬한 반대에 말려들어 장기공급계약을 못하도록 막았다. 정부가 전기 중간공급자의 위험관리 대책을 방해한 것.

또 경기호황으로 전기수요는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 전기도매시장은 발전회사가 좌지우지하는 ‘생산자우위(Seller’s Market) 시장’이 됐고 가스와 유가급등으로 인한 가격상승부담을 중간공급자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게 됐다. 가격이 왜곡되고 가격급등에 대한 대비가 불가능해지면서 발전회사가 원가를 절감하려는 노력이나 소비자가 전기를 아껴써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없어진 것. 산자부는 또 “지나친 환경규제 때문에 발전소 건설이 어려워진 것도 전력난을 부채질했다”고 분석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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