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바닥쳤다" "글쎄"

  • 입력 2001년 1월 27일 18시 22분


‘우리 경제가 바닥을 쳤다?’

청와대와 민주당 고위 인사들이 최근 잇따라 ‘경기저점 통과’를 주장하고 나섰다. 청와대관계자들은 시중에 자금이 비교적 잘 돌고 있고 증시가 다소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는 것 등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인식에 대해 경제전문가들은 한마디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실물경제지표에서도 경기가 바닥을 치고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징후를 찾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경기저점 통과 주장〓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6일 “주식시장이 호전되면서 우리 경제가 바닥을 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2월까지 4대 개혁의 기틀을 확실히 마련하면 지속적인 안정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의 기업대출 및 증시 고객예탁금, 외국인 투자액, 회사채 발행액 증가 등을 제시하며 “자금시장 여건이 급속히 호전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자금경색이 풀리고 주식예탁금이 늘어나는 등 투자심리에 불이 붙으면서 소비심리도 좋아지고 있다”며 ‘경기 바닥 탈출’을 주장했다.

이들은 얼마 전만 해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으나 설 연휴가 지난 뒤 공개적으로 경제 낙관론을 내놓기 시작했다.

민주당 박상규(朴尙奎)사무총장도 27일 이와 관련해 “전통적으로 12월과 1월은 경기가 나쁜 시점인데다 언론이 경기가 나쁘다고 보도해 국민의 체감경기가 악화된 것”이라며 “겨울로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봐야 하며 3월 정도부터는 경기가 풀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들의 ‘경기저점 통과’ 주장이 제기된 26일의 종합주가지수는 35.72포인트나 폭락한 591.73으로 마감, 600선이 다시 무너졌다.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청와대와 여당 고위인사들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며 비판한다.

이화여대 전주성(全周省·경제학)교수는 “최근 경기가 다소 뜬 것처럼 보이는 것은 각종 경기부양책과 산업은행의 기업 회사채 인수 등 자금시장대책이 겹치면서 돈이 넘쳐난 데 따른 ‘반짝 효과’로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며 “실물경기는 여전히 내림세이며 1·4분기에는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민병균(閔丙均)자유기업원장은 “자금시장은 워낙 나빴던 것이 각종 대책에 힘입어 조금 나아진 정도이며 특히 실물경기부문에서는 ‘바닥통과’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민원장은 “그렇지 않아도 정부가 섣부르게 샴페인을 터뜨려 문제를 일으키곤 했는데 또 나쁜 전철을 밟으려 한다”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청와대 경제수석실과 재정경제부 관계자들도 “지금 경기저점 통과를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빨라 보인다”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전주성교수는 “지금은 정부가 섣부른 ‘장밋빛 주장’을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정책의 신뢰성을 회복하고 경기부양책에 따라 다소 정책능력의 여유가 생긴 틈을 이용해 빨리 구조조정을 마무리할 때”라고 주문했다.

▽실물경제지표는 어떤가〓현재 실물경기를 정확히 보여주는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현재까지 발표된 각종 통계 및 경제부처의 경기인식을 살펴보면 경기바닥 탈출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재경부는 15일 내놓은 ‘최근의 경제동향’ 자료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경기가 비교적 빠른 속도로 둔화되고 있다”며 지표경기의 저조가 1·4분기에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1월 경제지표는 설 연휴에 따른 조업일수 단축으로 생산과 수출이 줄어들고 지난해 1월의 높은 증가율에 따른 반락(反落)까지 겹쳐 급추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11월의 전년동기대비 설비투자액과 건축허가면적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산업생산 및 도소매 판매율이 둔화되고 있고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5.8%에 불과했다. 민간 소비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 기대지수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재경부는 “다만 자금시장이 다소 안정되고 있으며 체감경기와 지표경기간 괴리는 다소 줄어들 전망”이라고 밝혔다

<권순활·윤승모·문철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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