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추가조성]금융기관은 '뻔뻔' 정부는 책임회피

  • 입력 2000년 9월 25일 18시 37분


‘뻔뻔한 금융기관, 무책임한 정부.’

공적자금을 40조원 추가조성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빛은행 등 은행들이 6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요청할 것이라고 나서자 곳곳에서 비판의 소리가 나온다. 은행등 금융기관들이 고용감축이나 자산매각 등 경영정상화를 위해 피나는 구조조정의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국민의 혈세(血稅)로 만들어지는 공적자금을 한푼이라도 더 받겠다고 아우성치는 모습이 뻔뻔스럽다는 지적이다.

구조조정을 뒤로 미루고 신용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아 기업대출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부실채권 회수도 하지 않은 채 복지부동(伏地不動)하다가 공적자금에만 매달리는 것은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의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투입된 110조원의 공적자금중 20%에 달하는 22조원 가량은 낭비됐다는 분석(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이 나올 정도다.

2조5000억원을 꿀꺽 삼킨 대한생명에, 다시 1조5000억원을 쏟아붓겠다는 정부는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공적자금 추가조성을 둘러싼 예측능력 결여와 말바꾸기, 기존 공적자금 투입의 문제점 등 ‘정책적 실패’에 대해 어이없는 강변을 일삼았다. 재정경제부는 불과 4개월전만 해도 “공적자금 추가조성이 필요없다”고 발표한 이유중 하나로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을 들었다.

정부의 이같은 ‘고백’이 진실이라면 경제현상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최우선시해야 할 정부가 자의적 판단으로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의도적으로 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념(陳稔)재경부장관은 결국 “경위야 어쨌든 정부가 공적자금 추가조성을 위한 국회동의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국민과 국회에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해야 했다.

재경부는 또 공공자금을 포함해 110조원의 공적자금을 퍼붓고도 금융산업 불안과 금융기관 도덕적 해이 등 많은 문제점이 남아있는데 대해서도 미묘한 논리를 폈다. 재경부 이종구(李鍾九)금융정책국장은 기자들에게 “큰 불이 나서 애써 불을 끄고 나니까 나중에야 물을 너무 많이 썼느니, 불끄면서 화단을 망쳤느니 하고 나무라는 것은 문제”라며 억울해했다. 공적자금 투입이 국제통화기금(IMF)사태라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정부분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식의 변명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책임있는 정부당국자가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위기론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충분한 공적자금을 빨리 투입해야 한다는데 토를 다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공적자금 투입에는 분명한 책임분담원칙이 서 있어야 한다. 기업을 부도에 빠뜨린 대주주와 경영자 및 부실규모를 키운 은행 임직원에게 혈세를 투입하는데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전에 고용조정을 포함한 자구계획을 세우도록 한 뒤 그것이 적정할 때만 최소한으로 투입하는 ‘선구조조정 후공적자금투입’원칙을 세워야 할 것이다.

<권순활·홍찬선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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