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태 타결]난파 일단 모면…순항은 미지수

  • 입력 2000년 8월 13일 19시 08분


금융시장을 20일간이나 ‘아노미’ 상태로 몰고 간 현대 사태가 일단 봉합됐다.

이번 수습안은 새 경제팀과 채권단이 인적청산 요구를 철회하는 대신 ‘실리’를 챙기고 현대측은 ‘마지막 자존심’이라며 결사적으로 저항했던 가신 퇴진을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명분’을 얻는 선에서 합의된 안으로 보인다.

▽수습안의 의미〓이번 발표안의 가장 큰 의미는 자동차의 계열분리로 3월 정몽구(鄭夢九) 정몽헌(鄭夢憲) 두 형제의 경영권다툼이 일단락됐다는 점이다. 3월부터 표면화된 두 형제의 충돌은 국내외 투자가들이 현대로부터 떠나도록 만들었고 결국 현대 전체의 신뢰성 상실을 가져왔다. 이제 형제의 갈등이 각 계열사의 분쟁으로까지 번지는 차단막이 만들어졌고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지분이 정리됨으로써 잠복된 불씨도 꺼졌다.

중공업도 조기에 계열에서 분리될 예정이어서 한 회사의 위기가 서로 묶여 있는 계열사 전체를 흔드는 현대 특유의 고질을 상당히 완화시킬 수 있게 됐다. 금융시장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준 현대건설 유동성문제도 현대건설이 부채를 1조5000억원 가량 줄이고 구조조정에 들어감에 따라 금융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건설의 유동성 문제는 각 계열사의 신뢰도 하락과 금융시장 전체의 마비를 가져왔다. 또 금융시장의 마비는 현대와 상관도 없는 중견기업들도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도록 만들었다.

현대건설이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천할 경우 금융시장도 안정을 되찾아 증시가 살아나고 자금시장도 살아나 기업들의 숨통도 어느 정도 트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은 불씨들〓이번 수습책 발표로 금융시장에서 ‘현대악몽’이 모두 사라진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현대를 위기로 몰고 갈 지뢰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우선 눈에 띄는 지뢰는 현대건설의 독자생존 여부. 건설업계 전문가들은 “건설업 전체가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상태에서 방만한 경영과 비효율적인 인력운용 관행이 여전한 현대건설이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특단의 구조조정이 없으면 현대건설은 다시 자금난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현대투신의 부실이 심화되거나 반도체 호황이 예상외로 일찍 끝나 과도한 부채를 지고 있는 현대전자가 불황에 빠질 경우에도 현대그룹 전체가 다시 한번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대북사업도 변수. 현대측은 10조원 이상이 필요한 대북사업과 관련해 “외자유치나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시행하겠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측의 계산이 빗나가 투자가들이 외면할 경우 대북사업에 5000억원을 투자한 현대 계열사들도 큰 손실을 보게 된다.

‘왕회장의 건강’도 변수.

왕회장이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돼 형제간의 분란이 다시 재연되고 기업보다 오너에 충성하는 가신들이 그룹에서 득세할 경우 투자자들은 영원히 현대에 등을 돌릴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 때는 현대는 대우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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