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號의 앞날]몽헌―몽구―몽준 '3M체제'로 분할

  • 입력 2000년 5월 26일 19시 33분


앞으로 현대그룹은 세 갈래로 나누어질 전망이다. 정몽헌(鄭夢憲)회장이 이끄는 이른바 MH 그룹과 정몽구(鄭夢九·MK)회장의 자동차그룹, 그리고 정몽준(鄭夢準·MJ)회장의 중공업 그룹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가운데 주력은 역시 MH 그룹. 현대전자 현대건설 현대증권 등 22개 계열사가 소속된 이 그룹은 정주영명예회장이 그동안 보유해 왔던 주식을 사실상 전량 매각함에 따라 최대 주주가 자동적으로 MH로 넘어갔다. 이와 함께 정몽헌회장이 자동차 관련 보유 주식을 모두 내다 팖으로써 MK의 자동차 지배가 굳어지게 됐다. 정명예회장이 자동차 지분을 다량 보유하고는 있으나 경영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며 사후의 상속권도 MK쪽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 중공업 부문은 금명간 정몽준회장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로써 현대는 MH MK MJ등 3M 체제로 완전히 분할된다. 계열 분할에도 불구하고 이 세 그룹은 여전히 우리 재계의 거물로 행세할 것으로 보인다. 자산 규모로 볼 때 세 그룹 모두 공정거래법상의 30대 계열기업군에 속하게 된다.

특히 MH 계열은 계열 분리 이후에도 자산이 무려 50조원으로 삼성에 이어 재계 서열 2위에 오르게 된다. 자동차의 MK 또한 서열 5위로 여전히 상위권에 머물게 된다.

어쨌든 이번 지분 정리를 계기로 몽구회장과 몽헌회장간의 경영권 다툼이 일단 끝을 맺게 됐다. 정명예회장은 현대자동차의 개인 최대 주주라는 지위만 가질 뿐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을 예정. 결국 정명예회장은 ‘창업자’라는 신화적 인물로 남게 되고 실권을 가지는 경영자는 더 이상 아니라는 게 현대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지분이 정리됐다고 해서 현대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몽헌회장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대그룹은 먼저 발등에 떨어진 현대건설의 자금난을 해결해야 한다.

몽헌회장은 25일 금강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투신이 경영정상화에 실패할 경우 본인이 반드시 책임을 지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다시 밝혔지만 시장은 아직 미지수라는 반응이다. 현대측은 “5월 중순 현대정보기술이 코스닥 등록 심사를 통과하는 등 자구 계획이 하나 둘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에 연말까지 자본 잠식분 1조 2000억원을 해소할 수 있고 결국 신뢰의 위기는 기우에 그칠 것”이라는 입장.

현대자동차 소그룹도 자금 사정은 현대그룹보다는 낫지만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외국의 투자가들은 연간 생산량 270만대 규모의 현대 및 기아자동차가 현대그룹이라는 뒷배경 없이 과연 세계 자동차업계의 재편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대가 세계 유수업체와 제휴할 것인지 포드나 GM과 손을 잡고 대우자동차 인수에 성공, 연산 400만대를 넘을 수 있을지가 최대 변수.

현대자동차는 또 삼성자동차를 인수한 르노 자동차와 국내시장 수성을 위한 한판 전쟁을 치러야 한다. 현대자동차 내에서도 “사실상 내수 시장을 독점해 와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져 외국 자동차가 본격 상륙하면 힘겨운 승부를 벌여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는 창사이래 최대의 분수령을 맞고 있다. 몽구 몽헌 두 형제는 경영권 확보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신뢰의 상실과 자금관리 실패로 야기된 문제를 수습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정부입장▼

정부는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자금 시장 전체로 확산하는 것을 우려하면서도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현대가 총대를 메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우와 달리 탄탄한 자금원이 될 계열사가 여러 개 있는 데다 현금 흐름에 당장 큰 어려움이 없는 만큼 현대가 직접 신뢰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현대측이 알아서 대처했어야 했는데 시장의 불신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 같다”고 현대측을 성토했다. 한 관계자는 “올해 초부터 정부는 이미 현대 계열사의 자금 사정이 시장 불안 요인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내부적으로 고심해 왔다”며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 때 지배 구조 개선을 강도 높게 촉구한 것도 시장 불안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위원회와 재경부는 특히 금융시장 불안과 제2위기설이 가까스로 진정되는 터에 현대 유동성 문제가 불거져 △64개 워크아웃기업 처리 방안 확정 △금융 지주회사를 통한 은행 구조조정안 등 개혁 조치들의 약발이 떨어지게 돼 망연자실한 표정. 금감위 고위 관계자는 “채권단의 유동성 지원 방침 발표와 현대 대주주의 주식 교환 등의 발표 시기가 매우 안 좋았다”며 애꿎은 채권단을 원망했다.

재경부는 26일 시장 반응을 예의 주시하면서도 별도의 입장 표명이나 정책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 이헌재장관도 간부 회의에서 ‘채권단이 실상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만 말했을 뿐 현대에 대한 언급은 회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시장에 직접 대응해야 하는 금감위는 현대의 지배 구조 개선 등 구체적인 신뢰 회복책을 주문했다. 서근우 구조개혁단 2심의관은 “대주주간 주식 교환으로 정주영명예회장이 경영에서 퇴진할 계기를 맞았다”며 “시장은 현대의 획기적인 지배 구조 개선을 바라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원재·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