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화제]동국제강, 초라한 사옥-화려한 경영

  • 입력 1999년 1월 6일 19시 19분


숱한 그룹들이 IMF관리체제를 못이기고 잇따라 무너지던 지난해 재계에는 이런 풍문이 나돌았다.

“5대 그룹을 제외한 30대그룹 중에서 절대로 망하지 않을 회사가 두 개 있다.”

재계가 꼽은 두 회사는 바로 롯데와 동국제강이었다. 두 회사의 낮은 부채비율을 두고 하는 얘기였다.

재계 순위 19위(작년 4월 기준)인 동국제강은 재무구조가 타의추종을 불허할만큼 재계에선 견실한 회사로 소문나 있다.

그러나 서울 을지로의 동국제강 본사 사옥을 처음 찾은 사람들은 대개 실망(?)을 금치 못한다. 동국제강 본사는 겨우 3층짜리 단촐한 건물.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는 조흥은행 보람은행 본점 등 고층 빌딩 숲속에 ‘숨어 있듯’ 초라한 모습이다.

74년부터 쓰고 있는 이 사옥은 원래 초등학교 교사로 쓰던 건물. 그동안 주변에 많은 고층빌딩들이 잇따라 올라갔지만 동국제강은 25년째 3층짜리를 그대로 고집하고 있다.

교사로 쓰던 건물이다 보니 사무실로 쓰기엔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이렇다할 수리는 작년에야 한차례 했다. 20여년간 사용하던 사무실 철제 책상도 그 때 새것으로 바꿨다.

이렇듯 초라한 사옥은 장상태(張相泰)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장회장은 평소 직원 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즐겨 식사를 할 만큼 검소한 성격. 장회장은 “그 정도 기업이면 사옥 하나 새로 짓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한마디로 일축한다.

“사옥 짓는데 왜 돈을 들이나. 그럴 돈 있으면 공장 설비를 늘려야지.”

장회장의 말대로 동국제강은 공장 투자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재작년 완공한 포항 공장은 첨단 전기로를 국내 최초로 설치했다. 93년 인천 철근 공장을 지을 때도 직류전기로를 역시 국내 첫 도입했다.

기업이 커지면 사옥부터 번듯하게 짓고 보는 우리 기업풍토에서 동국제강의 ‘3층짜리 사옥’은 실속경영의 상징으로 통할 만하다. ‘기업의 경쟁력과 사옥 규모는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다. 작년 기아나 진로 대농 거평 등 대형 고층 사옥을 자랑하던 기업들의 ‘외화내빈(外華內貧)’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빚없는 구두쇠 경영으로 유명한 태광산업도 허름한 사옥의 대표적 기업. 서울장충동의 현재 본사 사옥은 옛 고교건물로 50년째 그대로 쓰고 있다.

식품업계에서 ‘튼튼한 기업’으로 소문난 남양유업은 아예 자체 사옥이 없다. 30년째 입주해 있는 서울 남대문로 사옥은 세를 든 것이다. 16층짜리 건물 중 남양이 이용 중인 것은 4개층. 1백80명이 일하기엔 매우 비좁아 북적댄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홍원식(洪源植)사장 집무실도 10평 남짓의 작은 방. 책상과 소파 한개가 달랑 놓여 있을 뿐이다. 그동안 직원들 사이에서 볼멘 소리도 많았다.

“우리 회사는 돈도 잘 버는데 번듯한 사옥 하나 안짓나. 남보기에 창피하다”는 말들이 나왔다.

그러나 홍사장은 그때마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사옥은 급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남양의 ‘투자 1순위’는 공장 설비. 97년부터 전제품 공정을 자동화하는데 3백20억원을 들였다.

이런 실속경영 덕에 남양은 작년 흑자규모가 2백60억원으로 재작년보다 50억원이나 늘었다. ‘은행빚 전혀 없는 무차입 경영’도 실현했다. 연말에 남양 직원들은 특별상여금을 190% 받아 다른 업체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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